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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 시티 재건기 / 2040년대 ~ 2050년대

2023년의 핵폭발 사건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은 나이트 시티「도심(City Center)」「웨스트브룩 구획(Westbrook District)」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대재건이 이루어지는 2040년 이전까지만해도 재팬타운(Japantown)은 폐건물과 잔해들로 가득했습니다. 노스 오크(North Oak)는 이보다도 상황이 심각하여, 2020년까지만해도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노스오크 언덕 전역은, 천막촌과 판자촌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완전히 빈민촌으로 변해버린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노스오크에 재개발이 시작된 것은 다른 지역보다도 상대적으로 더딘 50년대 부터였습니다. 결국, 이 웨스트브룩 일대가 제대로 사람이 살만한 구역으로 정돈될 때까지는 약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랬기에 2040년대의 대재건 시기,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곳은 다름 아닌 왓슨 구획(Watson District)이었습니다. 이곳은 웨스트브룩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던 데다, 항구가 위치해 있어 외국계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에는 상당히 유리했습니다. 이 때 여러 유력한 일본계 의료 기업들은 왓슨 구획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거리 곳곳에 마천루를 세우고, 첨단 의료 센터를 지었습니다. 왓슨 구획의 산업이 번창하기 시작하면서 북부 공업 지역(Northside Industrial District, NID)이 생기자,「올 푸드(All Food)」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이곳에서 공장을 가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왓슨 구획의 일부인 가부키(Kabuki)는 불법 사이버웨어, 임플란트, 블랙 브레인댄스가 유통되는 나이트 시티 최대의 암시장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이 시기까지만해도 나이트 시티 제일의 의료 인프라를 자랑하는 부촌이었습니다. 중국발 디아스포라로 인해 204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계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해, 리틀 차이나(Little China)라는 명칭이 붙은 지역의 경우 나이트 시티 최고의 사이버웨어가 유통되는 지역이었으며, 다운 타운에 이은 제 2의 도심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반쯤 빈민가로 전락한 상태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대재건이 시작되면서 나이트 시티는 차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빈민들의 반대 때문에 재건 시작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노스오크 지역도 5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재건에 돌입하게 되었으며, 60년대에 이르면 나이트 시티 최고의 부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나이트 시티 곳곳은 이미 완전히 재개발이 완료된 상태였고, 이제 다음 타자는 나이트 시티 남부의 가난한 교외 지역으로 남아있었던 퍼시피카(Pacifica) 뿐이었습니다. 

원래 퍼시피카는 4차 기업전쟁 이전까지만해도 웨스트브룩에 필적하는 부촌이자 관광지로 유명했지만, 이 시점에 이르면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습니다. 이곳을 다시 한번 굴지의 관광지로 만들겠다, 라는 원대한 계획은 수많은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겼고 세계 경제 역시, 4차 기업 전쟁(Fourth Corporate War)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어 있었던 탓에 총알은 충분했습니다. 퍼시피카에는 수십억 달러가 투자되었고,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노마드들과 2062년 기후변화로 아이티 섬이 수몰된 후, 갈곳이 없어진 아이티 난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건설 사업이 한창이었던 시기, 문제가 터졌습니다. 통일 전쟁이 발발하고 만 것입니다.

 

 통일 전쟁(Unification War)의 발발

2069년에 이르자, 신 미합중국의 대통령인 로잘린느 마이어스(Rosalind Myers)는 국가의 세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유주들을 연방의 통치 아래에 묶어둠으로서, 연방 법률을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자유주들은 통일에 반대했으며, 이 때문에 양자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때 아라사카는 자유주 측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지만, 이미 밀리테크와 동의어나 다름 없었던 미합중국 군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자유주 측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나이트 시티 역시 북부 캘리포니아 자유주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미 합중국의 군대가 나이트 시티로 진군해오는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끝내 미군이 도시의 교외 지역까지 진출하게 되자,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루시우스 라인(Lucius Rhyne) 의원은 지난 10년동안 나이트 시티가 계속 기피해왔던 아라사카에게 보호를 요청하도록 의회를 설득해왔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나이트 시티는 아라사카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아라사카에 대한 정식 보호요청이 발신된 후 수일 이내에, 아라사카의 초대형 항모가 코로나도 베이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NUSA의 군대는 퇴각을 결정하지요. 

이후 아라사카의 개입에 의해 상황이 변하자, NUSA와 자유주 측은 통일 조약(Treaty of Unification)으로 알려진 조약을 체결하여 통일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이 조약에 의해 자유주들은 자치권을 유지했지만, 신 연방 정부에 참여해야만 했고 이들 상호간의 적대행위는 금지되었습니다. 마이어스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아라사카의 개입으로 인해 미 전역으로 분쟁이 확대되어, 정부 측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조약에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통일 전쟁 이후의 나이트 시티

이 통일 조약의 결과로 인해, 나이트 시티는 국제적인 자유도시로서, 신 미합중국에도, 북부 캘리포니아 자유주(Free States of Northern California)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한 독립 도시 국가로서 재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손에 넣은 자유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진 대신, 나이트 시티는 거대기업들의 영향력 증가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고, 기업들 역시 미대륙 서부 해안지역에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나이트 시티의 경기부양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라사카의 존재감이 가장 거대했습니다. 이들은 2070년, 아라사카는 2023년의 테러로 인해 파괴된 구 미국 지사 자리에 재건축 허가까지 얻어내었고, 결국「아라사카 타워(Arasaka Tower)」를 재건했습니다. 

이렇게 아라사카가 완전히 나이트 시티로 복귀하면서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라사카는 왓슨 워터프론트를 장악하고 그 명칭을「아라사카 워터프론트(Arasaka Waterfront)」로 바꾸면서 나이트 시티의 물류 전체를 지배하였고, 여러 법률가・은행가들을 끌어들여 나이트 시티를 이미 선점하고 있던 경쟁 기업들을 조금씩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왓슨 구획을 주름잡고 있었던 일본계 기업들을 그 주요 타겟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업들이 주춤하면서 북부 산업 구획(NID)의 공장들도 한산해지기 시작했으며, 왓슨 구획 전체의 경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나이트 시티 재건의 중추였던 왓슨 구획은, 이미 활기차고 번창하던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60년대 중반, 촉망받던 투자지였던 퍼시피카는 이보다도 더 심각했습니다. 통일 전쟁 발발로 인해 겁을 집어먹은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발을 빼자, 건설을 위해 데려온 아이티 난민들은 갈곳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만의 지역 사회를 구성했고, 배타적인 것으로 유명했던「부두 보이즈(Voodoo Boys)」마저 이들 아이티 난민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 전쟁이 끝난 후, 일부 투자자는 퍼시피카 프로젝트를 재개하려고 했는데, 당연히 이 난민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나이트 시티 측이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면 할수록 난민 측의 반발은 더 격심해졌기 때문에 이 지역은 결국 방치되었고, 컴뱃 존(Combat Zone)이 되어버렸습니다. 

2077년 시점에서는, 과거 통일 전쟁 당시 아라사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루시우스 라인(Lucius Rhyne)이 나이트 시티의 시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시장 선거에서 웰든 홀트(Weldon Holt )와 페랄레즈(Peralez)와 경쟁하고 있지만, 재선되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입니다. 아라사카는 이미 실질적으로 나이트 시티를 차지한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지금은 비록 나이트 시티의 혼돈의 시대가 저물었을지 몰라도,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미국의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이트 시티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는 아주 쉽게 무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 질서가 무너졌었던 과거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죠.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고, 아직도 거리 곳곳에는 갱단이 숨죽이고 있고, 여러 메가코프들이 호시탐탐 권좌를 차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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