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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자세를 잡는다.
갈무리하듯 상체를 전방으로 기울인 채,
진지한 눈빛만으로 적의 시선을 쫓는다.
팽팽하게 매긴 활시위를 연상케하는 만궁(彎弓)의 자세다.
그는 지면에 힘차게 뿌리내린 상태 그대로
투기 한 점 내보이지 않았다.
정갈하고 소탈하기까지 한 손오공의 모습.
한편 대치하는 베지터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꿈틀거리듯 뻗어세운 세 손가락은
뽐내듯 강자의 패기를 내보인다.
그 아래, 입꼬리는 자긍심으로 말려올라가 있다.
영원에 가까운 정적.
황량한 벌판에 한바탕 북풍이 휘몰아치고,
그것을 계기로 두 맹자는 포탄처럼 준동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손오공이었다.
질풍을 연상케하는, 쏜살같은 질주.
강맹한 풍압까지 동반하며 그의 왼주먹이 점이 되어 쇄도한다.

범인(凡人)이라면 시인(視認)조차 못하고
두개골이 깨뜨려질 일격을
베지터는 고개만을 움직여 여봐란 듯이 피해내고는
손오공의 기세를 깎아내듯 견제의 연격을 발한다.
지근거리에서 초동(初動)하는 베지터의 양손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낸다.

동시에, 손오공은 허리를 비틀어 반격하듯 발차기를 날린다.
그러나 그것은 베지터의 반응속도를 능가하지 못한 채
부우웅, 하며 허공을 갈랐다.
터무니없는 스피드로 거리를 벌리는 베지터.
그 속도가 이러하랴 싶은 기세로 추격하는 손오공.
황무지 곳곳의 기암절벽을 발판삼아
탄환처럼 되튕기며 추격한다.
손오공의 공세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와중에,
기대를 배신하듯 베지터의 전신이 당돌하게 반전했다.
한번의 발구르기로 함몰되는 암석.
비산하는 돌조각.
그것들보다도 빨리 베지터의 동작이 가속된다.
맞돌격이 된 형세에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베지터의 팔꿈치가 손오공의 턱밑에 작렬했다.
강렬한 충격이 뇌수를 뒤흔들고 자세가 무너진다.
주홍빛 도복이 낙엽처럼 무너져 흩날린다.
오공은 다음 순간
공중에서 몸을 추스리고 바위를 박차며 날아오른다.
하지만 그 시선의 끝에, 베지터의 모습은 없었다.
"!?"
배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손오공은 다짜고짜 몸을 움츠렸다.

사각에서 노려오는 베지터의 수도(手刀)를
종이 한 장 차로 피하고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견제의 킥을 넣는다.
그것은 이미 늦다.
또다시 허공을 가른다.
베지터는 이미 간격을 벌렸고
그의 추격을 봉쇄하는 듯이 견제타를 잊지 않는다.
그것을 또다시 온힘을 다해 회피한 후 달라붙는다.

이어지는 지근거리에서의 공방(攻防).
노도(怒濤)와도 같이 교차하는 두 그림자.
그러나 그것에 의미 따윈 없다.
이미 완벽하게 방어태세에 들어간 베지터는
거의 흐트러짐 없이 손오공의 맹공을
막고, 피하고, 흘리고, 견제하고, 받아내며
여유있는 미소마저 흘렸다.
"뭐 하냐, 카카로트!?"
부웅, 하고 강맹한 풍압이 대기를 흔든다.
본래라면 거암조차 한방에 으깨부술 위력이 담긴 주먹.

베지터는 그것을 간결하게 피해낸다.
"그 정도 실력은 아닐 텐데!"
큰 동작의 여파에 무너져 있던
손오공의 복부를 그대로 걷어찼다.
재차 삼차 연속되는 스탬프.
"내퍼 녀석을 쓰러뜨릴 땐 이 정도가 아니었잖아!?"
그것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보여봐라!!"
두 주먹을 깍지낀 채 해머처럼 내려치는 동작을 놓쳤다.

후두부를 무자비하게 강타당하며 손오공은 수직낙하했다.
그리고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간신히 공중제비를 돌아
사방에 추력(推力)을 흩뿌리며 지면과의 격돌을 면했다.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충격을 흘리지 않았다면 위험한 일격이었다.
그는 태세를 재정비하면서도
으득, 하고 이를 악문다. 공방의 결과는 명확했다.
"역시 대단해..."
손오공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는 지금껏 여럿 보아왔다.
그 중에는 파워면에서 앞서는 이도 있었고,
경험면에서 우위에 있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사이어인은 이질적이었다.
무작정 강한 게 아니라 전투 자체에 무서우리만큼 능숙했다.
격투센스라고 해야할까.
그것이 지금까지의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신을 옥죄여오는 긴장감에 땀을 흘릴 수밖엔 없었다.
"놈은 아직 전혀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는데, 스피드와 기술이 나보다 한수 위야..."

베지터는 팔짱 낀채 추궁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연(傲然)하기까지 한 태도.
한 차례 주먹을 섞어봐서 알았다.
기를 끌어 올려 출력을 동등하게 맞춘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지 없을지...
허나 한가지는 명확했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 보여주마!"
결단하자마자 손오공이 새빨간 오라로 폭발하듯 감싸였다.

부우---웅, 하는 진동음.
전신이 붉은 빛으로 불탄다.
가열하듯 끓어오르며 멈출 줄 모르고 부풀어지는 기백.
온 몸의 모든 기를 컨트롤해서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야말로
계왕권의 오의(奧義)이다.
그리고 그것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져
임계점에 도달하기 한참 전에,
"계왕권을!!"
끓어오른 기를 그대로, 전방으로 날렸다.
"에잇!!"
기습적인 충격파가 베지터를 덮친다.
인영(人影)이 후퇴하는 것과
기가 착탄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한박자 늦게 베지터가 서 있던 절벽이
도괴(倒壞)되며 바윗조각이 난무한다.
형체를 잃고 휘몰아치는 파편들 사이로,
베지터는 더욱 거세게 가속하며 물러섰다.
야성적인 본능으로 공격을 직감하고
이미 회피동작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것을 놓칠 손오공이 아니었다.
전신에 스파크를 걸친 채,

가속에 가속에 가속을 더하며,
포탄처럼 창공을 질주했다.
"!!"
베지터조차 반응이 늦다.
손오공의 어퍼가 베지터를 직격해
그 얼굴이 기묘한 각도로 뒤틀렸다.

그대로 주먹으로 연타한다.
손쓸 틈도 없이 연속해서 유효타를 밀어넣은 뒤,
벌려진 간격 그대로 발차기를 꽂는다.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인형처럼 뒤로 튕기는 베지터의 몸.
그것을 추격하며, 적색 스파크는 재차 가속한다.
몰아세우며 승기를 굳혀나간다.
아니, 굳혀나가려 했다.
그 순간, 베지터가 자세를 추스렸다.
"!!"
아무 장애물도 없는 공중에서
일신의 기력만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연타로 인한 충격 따위
미진(微塵)도 없다는 투로
그대로 반전해 오라로 뒤덮인 손오공을 강습했다.
반응할 틈도 없이,

찍어올린 발차기가 손오공의 턱끝을 용서없이 강타하고,
"큭!"
공세일변도였던 손오공의 기세를 뿌리채 뽑았다.
그 일격으로 강맹하던 적색 오라마저 씻겨나갔다.
"....!"
손오공은 낙하할 뻔한 몸을 겨우 추스렸다.
지상에 착지한 상태로 베지터를 올려다 본다.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계왕권조차, 녀석에겐 통하지 않는다.
터무니없을 정도의 강적.
"크흐흐... 지금 이게 한계라면 내 기대와는 완전 딴판인데?"
베지터의 여유있는 태도는 변함없었다.
그의 입가에 맺힌 미미한 핏줄기 하나만이,
아까 전의 공방을 증명하고 있을 뿐.
계왕권조차 결정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 사실에, 손오공은 전율한다.
그리고 동시에 심장의 고동이 그 이상으로 소리를 높였다.
이마에는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어째선지 입꼬리는 비틀려져 있다.
위험한 순간에도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베지터는 오공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순간적으로 기를 2배까지 증폭시킨 계왕권조차,
그에게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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