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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전화 세줄요약>-----------------------------------------
근처 마을에 도착한 뒤, 거기서 마차를 잡아탐.
다음 마을로 이동 중에 용병 삼인조와 마주침.
엘프마을로 향하는 듯해서 정보수집을 위해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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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렸다. 그 마차는 이미 트로트에 가깝게 속도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걸어서는 따라붙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오래 달릴 필요는 없었다. 내가 그들이 탄 짐칸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후방을 주시하고 있던 여전사가 내 기색을 알아채곤 마부에게 말을 늦추게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속도가 줄어드는 마차를 보면서 나도 빠른 걸음 수준으로 기세를 낮췄다. 여전사는 다가오는 나를 경계의 눈으로 예의주시하더니 내가 미처 말을 붙이기도 전에 날카롭게 추궁해왔다. 그녀의 오른손은 벌써 허리춤에 가 있었다. 잔잔한 예기를 발하는 프랑시스카가 거기에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무슨 용건이냐?"
저음에 가까운, 악센트 있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초장부터 그녀에게 약간 주눅들어 있었다. 2미터에 달하는 키와 그에 걸맞는 당당한 풍채. 폭발할 듯 밀도 높은 전신 근육을 체인과 가죽의 갑옷으로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덩치 큰 여자였다. 마치 '여전사' 라는 단어를 그대로 형용해놓은 것 같은 실루엣은 일종의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외모 역시 결코 그것에 뒤지지 않았다. 긴 잿빛 머리카락과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이목구비, 늠름함이 떠오르는 얼굴 표정은 성별을 떠나 왕자의 풍격마저 감돌게 하고 있었다.
"저, 실례합니다만."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짐칸 내 다른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 각자 전방과 측방에 시선을 던지며 경계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프로다운 움직임이었다. 눈 앞의 여전사 역시 나를 정면으로 포착하면서도 시야의 한 구석으로는 끊임없이 동료들의 행동과 주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보아하니 용병분들 같으신데, 이런 벽지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순수한 궁금증을 가장하면서도 나는 최대한 무해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년간의 영업 경험으로 단련된, 사람 좋은 미소를 덧대면서 양손을 펼쳐 적대의사가 없음을 피로했다. 그 미소와 제스쳐는 예상대로 효과만점이었다.
여전사는 그런 나를 한참동안 조용히 응시하더니 김 빠진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운 눈썹을 찌푸리고 쏘아보며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
"부외자는 꺼져라."
살짝 분노를 이글거리며 씹어먹을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짧은 금발의 남자가 다소 경박한 어조로 참견해왔다.
"어이어이, 도르테아. 그렇게 성내지 말라고. 항상 말하잖아, 일반 민중에겐 되도록 친절하자구"
염소같은 수염을 기른 초로의 남자였다. 그는 여전사의 어깨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치더니 그대로 마차에서 내려왔다. 또 다른 한 명, 온 몸을 흑색일색의 복장으로 감싼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짐칸 위에 남아, 여전히 경계의 시선을 빛내고 있었다.
"미안 미안. 저년 원래 저래. 근육뇌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짐칸에서 내려온 염소 수염은 폭소하며 붙임성있게 말을 건네왔다. 남자의 탁한 금발이 눈에 띄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띄우며 태연하게 동료를 디스하는 광경 한구석에서 근육 같은 게 꿈틀거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나는 분위기가 약간 이완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눈앞의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넉살 좋은 미소 너머로 맹수같은 야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요... 그나저나 아까 사냥이라고 얼핏 들렸는데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나는 동정을 살펴보기로 하고 키워드를 던졌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이크, 들려버렸나? 곤란하네. 그래 굳이 콕집어 말하자면 사냥 맞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어쩔수 없다는 듯 헤픈 동작을 취한다. 그와 동시에, 새까만 허리끈에 걸린 두 자루의 장검이 흔들렸다.
"이 근처에 마수라도 출몰합니까?"
"거야, 기업비밀이니 말해줄 수 없지~. 아! 금화 한냥이면 사장님 마음도 바뀔지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말해왔다. 금화 한냥이면 지불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진심인 것같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번쩍 뜨더니,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형씨, 저 숲에 대해선 좀 아나?"
나는 경계의 수위를 높였다. 아마 이 이상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 자들이 그 흑기사와 한패라는 직감은 이제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나는 허리끈에 매인 단검의 위치를 다시금 머릿속에 집어넣으면서, 이 자리를 무마하고 당장이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벗어나서, 알리러 가야 한다.
"일반 상식 수준은 알지요."
적당히 얼버무리고 뒷걸음질을 치려고 하자,
"그럼 엘프에 대한 소문도 들으셨나? 숲 어딘가에 놈들이 숨어사는 마을이 있단건?"
용병들은 적당히라는 걸 몰랐다. 싸늘한 살기가 밀려왔다.
그 때,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발작하듯 몸이 떨린 순간, 통렬한 아픔이 무자비하게 뒤통수를 흔들어왔다. 아득해져가는 의식의 끈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배후에서 둔기를 휘두르는 흑복의 남자를 향해, 본능적으로 마력을 퍼부었다.
"뭐...?!"
그림자가 거미처럼 벗어난 자리에는 반박자 늦게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동공으로 그것을 추미할 틈도 없이 시야 한구석에 짧고 탁한 금발이 흔들렸다. 시퍼렇게 달아오른 칼날이 지근거리에서 번뜩였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 그것을 빗나가게 하고는, 빈틈없이 침로를 수정하며 재차 번뜩이는 검극을, 전력으로 휘두른 단검의 칼날 부분으로 튕겨냈다.
검날의 이가 빠지는 더딘 금속성. 무리한 기동으로 자세가 무너져내린다. 그 간극을 틈타, 점이 되어 쇄도하는 장검을 보고 "죽어!!!" 일갈하며 살기를 흩뿌린 순간, 눈앞의 공간에서 또 다시 번갯불이 피어올랐다. 금발의 염소수염은 아슬아슬하게 그 거리를 빠져나왔다.
이 때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몸을 돌려 도주할 수는 없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미약한 파공성이 귓전을 때려왔기 때문이었다. 허공을 베어가르는 프랑시스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린, 이글거리는 도끼날.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면서 이를 악물고 칼날을 휘둘렀다. 방어 목적이었지만 어이없게도, 있는 힘껏 휘두른 단검은 도끼날의 무시무시한 질량에 밀리고 압도당한 뒤 으깨져, 그것을 쥔 손가락 째로 뜯겨져나갔다.
실신할 듯한 아픔을 낳는 갈기갈기 찢어진 손. 통증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여전사의 두 번째 투척은 무표정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의 터질듯이 수축한 이두박근과 극단적으로 비틀린 허리 관절을 시인한 순간, 나는 모든 감각을 닥치게 하고 전속력으로 뒤로 뛰었다. 그러나 모든 게 이미 늦었다. 죽음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문답무용으로 등이 뜯겨져나가는 느낌. 극한의 고통이 전신을 불태운 것은 단 한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대가로 손발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목부터 아랫쪽은 감각이 사라졌다. 경추에는 도끼가 박혀있다. 순식간에 균형을 상실한 몸은 추력을 감추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전방으로 널부러졌다. 입안으로 진흙이 들어왔다. 호흡이 너무 괴로워 텁텁한 그것을 내뱉지도 들이마시지도 못했다. 말라비틀어진 물고기처럼 버둥대고 있던 사이에 어느샌가 인기척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거야, 등뼈 부러졌구먼~"
놀리는 듯한 어조. 그것과는 별개로 금발 염소수염은 더이상 웃음기를 머금고 있지 않았다.
"불쌍하게 됐네만, 그런 계약이라고. 수상한 녀석이 접근하면 죽여라. 그런 조항이 있었어."
긴 장검을 비스듬히 빼어드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리고 넌 충분히 수상하니까, 지금 바로 편하게 해주지."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작스레 아, 하고 생각난 듯이 말을 이어왔다.
"혹시라도 관계없는 일반인이었다면 미안해~ 딱히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원망하지 말라고"
앞으로 퍼질러진 상태였기에 녀석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귀신이 되어서 저주! 그런건 없기야. 죄없이 말려든 거면 애도의 뜻을 표해줄게. 좀 봐줘."
나는 참 말이 많은 녀석이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엄습하는 타는 듯한 통증. 단칼에 심장이 꿰인다. 토혈이 엄청난 기세로 흘러나와 입안의 진흙을 씻어냈다. 신체의 말단부터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고동하던 심장은 그 한 번의 고통에 깨끗하게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의식이 희미하게 멀어져가며 주마등이 느리게 찾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죽음은 단지 상태의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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