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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15화 흔들다리 효과
「미안, 미안해요. 시그 씨. 시가플 씨. 노예 주제에 너무 설쳐대고 말았어요!」
나는 일단 사죄를 표하면서 양손을 높게 들었다. 전면 항복하는 포즈다.
「사과할 필요 따윈 없어!」
루가무가 날카롭게 내뱉듯이 말했다. 그거야, 그렇다. 형식적으로 보면 루가무는 나를 위해 대신 화를 내주고 있는 거니까, 내가 멋대로 사과했다간 입장이 난처해진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할 것은, 진실로 정말 많았다. 헤이모스와 파라고가 일으켜버린 시그와의 대립. 스테아의 공황. 시그의 스트레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분출에 대한 루가무의 분노.
게다가 그런 갈등들을 모조리 무시하더라도, 우리는 바로 다음 순간 모두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장소에 모여 있다. 대체 무엇부터 해결해나가야할지 막연해진다.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일단 살아 돌아갈 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구할 수 있는 것조차 구할 수 없게 된다.
먼저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시키지 않으면 파티가 붕괴한다. 라고는 해도 취할 수 있는 수단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죽음을 강하게 의식하고 마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간단히 미치게한다. 역전의 모험자들조차도 그렇게 말하곤 하니까 우리 같은 초짜 팀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의심스럽다.
「루가무, 잠깐 기다려. 설명할게.」
나는 간단히 노예제와 자신의 신분, 자유시민인 시그와의 제도상의 격차에 대해서 설명했다. 채권노예로서 어느 정도의 권리는 보장받고 있지만, 그래도 자유시민과 동등하게 대접받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즉, 순서가 있다면 당연히 자유시민에게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고, 의자가 부족하다면 노예가 서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편하게 대해주고 있었던 까닭에 외견상으로는 대등한 입장처럼 보여지고 있었을 지는 몰라도, 그건 리더인 시그가 그런 부분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반대한다면 나는 그냥 노예로 취급받는다. 적어도 제도상은.
그는 그런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나고 자라왔다. 물론 그 사실을 지적해서 이 타이밍에 욱하게 만드는 건 피하고 싶다.
「그런건 상관 없어. 그냥 저 바보놈이 마음에 안드니까 때리려는 거야!」
루가무가 내뱉듯이 말한 순간,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데다가 그녀는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태클에 성공했다. 내심 반사적으로 얻어맞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 그녀는 그저 깜짝 놀라 아연해져 있었다. 이건 루가무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녀에게 그럴 마음이 들면, 나 같은건 한 방에 내팽겨쳐지겠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냥 포옹이었다.
「루가무,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나와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당돌한 프로포즈.
「......에?」
루가무는 한 박자 늦게 당황해하는 소리를 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놀라서 기가 막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황 상태였던 스테아조차 딱, 하고 입을 열고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전은 성공한 듯했다.
각자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공포가, 말하자면 달리 생각할 것이 없으니까 증폭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완전히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공포가 밀려나가게 된다.
나는 돌발적으로 프로포즈를 하거나 아니면 국부를 노출한 뒤 오줌을 갈기는 것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프로포즈 쪽을 택했다. 오줌이라면, 잘 된다고 해도 역시 껄끄러워지니까. 나는 루가무의 손에 의해 살짝 뿌리쳐졌다.
「미, 미안......」
루가무는 곤봉을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거절당하는 부분까지 이미 예상해놓은 상태였다. 다만, 모두의 정신을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미 대성공을 거둔 상태다.
「아니, 괜찮아. 갑자기 미안해.」
「아냐! 싫진 않아. 나, 그런 거랑은 연이 없었으니까, 깜짝 놀라서.」
어라, 뭔가 예상한 거랑 좀 달라?
「기뻐. 살아 돌아간다면 결혼하자.」
실패했다. 고양상태를 과소평가해버리고 말았다. 오줌을 쌌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그러다가 내심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아까 전으로 돌아가고 만다.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큼 작게 심호흡을 한 뒤, 새빨간 거짓말을 할 각오를 했다. 곧바로 루가무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루가무. 이봐, 스테아, 그러니까 우리 결혼에 신의 축복이 깃들도록 기도해주지 않을래?」
스테아에게 화두를 던지자, 그녀는 잠시 에......아..... 같은 반응을 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사명을 떠올리고는 결국 더듬거리며 기도를 올려주었다. 그 다음은 검 손잡이를 그대로 손에 쥔 채 얼어붙어 있는 시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시가플 씨, 죄송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전에 한 실례에 대해서 제 아내에게도 나중에 따끔하게 타일러 놓겠습니다. 또 앞으로는 노예로서의 주제를 새로이 알고, 절도를 갖고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언짢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상으로 돌아가 뒤에, 기분이 풀리실 때까지 처분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깊이 고개를 숙이자 시그는 당황해하며 검에서 손을 뗐다.
「아니, 아냐. 내가 좀 어떻게 됐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니까 잊어줘. 지금까지처럼 시그라고 불러줘. 루가무도, 미안했어.」
이 남자는 원래 마음씨 좋은 호인이다. 화내던 기세가 꺽여, 이제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딱히...... 상관없는데.」
루가무도 쑥쓰러워하며 사죄를 받아들였다.
「시그, 우리들도 잘못했어. 너의 지휘에 따랐어야 했다. 용서해 줘.」
우리들의 동향을 보고 있던 헤이모스와 파라고가 머리를 숙였다. 그리하여 나와 루가무의 결혼이라고 하는 순간적인 미봉책 덕분에, 파티원끼리 죽고 죽인다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우리들이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곳에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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