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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12화 지하 2층으로


양치기 소녀였던 루가무의 마을을 습격한 비극은,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50명이 넘는 패전용병 찌꺼기들로 이루어진 도적단이 그녀의 마을을 습격한 것이었다. 저항을 꾀하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살해당하던 와중에, 루가무는 손에 익숙했던 곤봉을 휘둘러 도적 10명을 때려 죽이고 그대로 산속 깊은 곳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도적단은 여자와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명령해 루가무를 추적하여 붙잡게 했다. 추적자들은 물론 루가무가 잘 아는 얼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도주극을 벌이다가, 결국 20명 이상의 지인들을 때려 죽인 후에야 겨우 도망칠 수가 있었다.

이리하여 살 곳을 잃은 루가무는 동시에, 상식에서 벗어난 자신의 괴력을 자각하고는 그 능력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가 빚까지 지게 되어 결국 이 미궁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산적이나 용병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약간이나마 안도했다. 결과적으로 객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되니까.

「언젠간 말야. 좀 더 강해지면 그 도적단을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생각중이야」

루가무는 웃으면서 말했다.

「복수하기 전에 나도 불러줘, 그때 내가 노예에서 벗어났으면 도와줄게」

나도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딱히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래에 무언가를 기약할 수 있게 된 것이 왠지 모르게 기뻤다. 그녀도 나도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 바로 앞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눈치채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훗날을 기약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자신들의 운명을 향해 한차례 코웃음을 쳐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뀌는 건 무엇 하나 없을 테지만.



결국 휴식 시간은 끝나고 우리들은 또다시 걷기 시작한다. 요즘에는 상황이 좋다. 라고는 해도, 끝없이 깊다고도 표현되는 미궁 입구 부근을 조심스럽게 걷는 것뿐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 같은 것도 발견했지만 지금은 그냥 바로 지나친다.

미궁의 괴물들은 지하 깊숙히 내려갈수록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리더인 시그는 첫 전투에서의 처참한 성적을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는 모양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마을 주점에서 정보교환을 한 동기 조합원들은 하나 둘씩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듯 했다. 단, 주점에서 마주하는 동기생들의 얼굴이 예전에 비하면 3할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시그의 판단이 어리석은 건 아니었다.

다만, 효율이 나쁘다.

도랑에 떨어진 동전 하나 줍자고 매번 진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우리의 모험은 다른 파티들에게도 비웃음을 사고 있다, 라고 헤이모스는 말했다. 그는 모험의 진도를 좀 더 빠르게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내 빚이 조금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역시나 그런 비효율적인 방식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한다. 그래도 순식간에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큼 허약한 내가, 지금까지 모험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그런 안전지향적인 방식 덕분이기도 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서 노예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전위들의 판단에 따를게요, 하고 자주성을 방기한 채 꽁무니를 따라갔다. 시프인 파라고는 원래부터 헤이모스와 콤비였기도 했던 까닭인지 최근에는 시그를 말로 부추기고 있었다. 즉석으로 조직된 우리의 파티는, 진로 문제 때문에 공중 분해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장소는 땅속이지만.

「적어도 말야, 계단은 내려가 보자구. 바로 돌아와도 되니까. 2개월이나 모험자일 하고 있는데, 아직 단 한 번도 2층에 내려가본 적이 없습니다 라니 진짜 추하다고」

헤이모스는 타협안을 내밀었다.

「뭐, 요즘은 좀 안정적이니까. 벌이가 좀 더 나아진다면 그것도 좋지」

루가무가 수긍했다. 시그는 나와 스테아를 흘깃 보았지만, 불안해보이는 스테아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만약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헤이모스와 파라고, 루가무가 전진을 지지하고 시그와 스테아가 현상유지를 희망하겠지.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도 입장상 현상유지 쪽일 테지만. 그렇게 되면 시그가 리더로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래로 내려간다. 단, 한번이라도 마물과 전투하고 나면 오늘은 바로 퇴각한다」

지하 2층 이후부터는 마물도 강해지며 미궁 역시 복잡해진다. 당연히 생환자의 수도 격감한다. 시그는 2층에 내려가서도 신중하게 탐색을 진행할 생각이겠지.



우리는 결국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통로에 도달했다. 미궁은 넓고, 가로로 펼쳐져 있기는 했지만 어느 지점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원래는 마물들이 이용하는 통로였지만 모험자들이 강제로 넓히고 계단을 설치해 통과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계단, 이라고 불리는 말마따나 아래층을 향해 여러 단이 깎여 있었다.

그 끝에는 더욱 광대한 미궁이 또 다시 가로로 펼쳐져 있다. 조합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현재 지하 35층까지는 모험자들이 탐색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궁에는 더욱더 깊숙한 곳이 있으며 그곳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는,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직도 불명이라고 한다.

편의상 지하 1층, 2층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은 상당히 길다.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면 그걸로도 충분히 죽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신중히 계단을 내려가면서, 돌아갈 때 귀찮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계단도 끝이 났고 우리는 약간 홀가분한 상태로 지하 2층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보라구,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니깐 너무 쫄아 있는 거라니까. 조심성 있는 건 좋은 거지만, 어차피 모험인데 앞뒤전후 생각하면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간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끝난다구」

헤이모스가 쾌활하게 말했다. 아마도 두려운 거겠지. 주춤할 것 같은 자신을 무리하게 고무하기 위해 뱉은 말처럼도 보였다. 계단 바로 앞에 있는 세갈래 통로를 마주하고, 시그는 직감에 의지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스테아와 파라고가 지도를 만들면서 뒤를 쫓는다. 나는 후위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편이라서 언제 시작될 지도 모르는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마물은 나오지 않았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싸우면 귀환하기로 정했는데 이 모양이다. 우리는 미궁의 악의에 농락당하면서 축적되는 피로를 느끼며 안쪽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적당한 곳에서 끊고 돌아갔으면 좋았을 테지만, 우리는『한번이라도 전투를 마치면 돌아간다』라는 조건에 너무 몰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처음으로 지하 2층에 내려왔다는 사실에 조금 들떠 있었던 것이었을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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