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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5화 주인


날은 이미 저녁 무렵이긴 하지만 아직 밝다.

거리를 걷고 있자니 순찰대가 몇번이고 스쳐 지나갔다. 아까 술집 주인이 했던 이야기는 아무래도 진짜인 듯 했다. 경비병들은 모두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뛰어다니고 있었다. 혼자 다니는 노예가 순찰대에게 발견되면 곧바로 포위당한 채 이런저런 질문을 받게 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그 사건 덕분인지 오늘은 한번도 붙잡히지 않고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택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훌륭한 곳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자리한 건물들에 비하면 약간 세련함이 부족해보이는 듯한 인상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항상 좀 잘나 보이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약간 부족한, 내 주인의 본질이 투영되어 있는 듯 해서 나는 별로 싫지 않았다. 저택 뒤편의 통용문으로 돌아가니 하인인 노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워했다.

「어이, 돌아온 거냐. 잘됐군!」

「네, 지금 막 돌아온 참입니다, 미가노 씨」

미가노 씨는 무산 계급의 자유 시민이지만 나에게는 잘 대해준다.

「주인님은 식당에 계시니까, 보고하러 가게」

「괜찮을까요?」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어디까지나 정원 구석에 세워져 있는 헛간뿐이었지,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건 웬만해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주인님께서 신경쓰고 계신단다. 니가 돌아오면 식당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어」

주인은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서 어딘가 약간 부족한 남자였다. 만약 내가 미궁에서 죽어버렸다면 대체 언제까지 기다릴 작정이었을까? 나는 미가노 씨를 향해 가볍게 인사한 후, 부엌문을 통해 저택으로 들어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호출받았다곤 해도 정면 현관은 쓸 수 없었다.

부엌에서 식당으로 빠져나가자 그곳에는 주인이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이미 과음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평균보다 머리 반개 정도 키가 크고, 가슴 근육도 두터운 대장부 체형이기는 했지만 힘은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뭐니 뭐니 해도 술은 좋아하는 주제에, 터무니 없이 주량이 약하는 점에서 이미 답이 없다.

「주인, 미궁에서 돌아왔습니다!」

내가 말을 걸자, 주인은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무거워 보이는 머리와 음침한 구렛나루가 어우러져 왠지 모르게 울적해 보였다.

「오오, 돌아왔나. 어땠냐, 벌이는 좀 됐냐?」

나는 주머니에서 4닢의 은화를 꺼냈다. 주인의 얼굴이 확, 하고 밝아졌다.

「오오, 꽤 좋은걸? 내놔」

나는 손을 뻗지 않고 주인의 말을 거절한 채 은화를 주머니에 되돌렸다.

「저는 채권노예니까요. 번 돈은 제대로『은행』에 넣어 두겠습니다」

나는 범죄노예가 아니라 채권노예다. 그 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채권노예는 재산권을 인정받으며, 어느 정도 제약은 있지만 인권 역시 보장된다. 설령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침해하면 처벌받게 된다. 그리고 채권 변제를 완료하면 노예 신분에서도 해방되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도 채권노예에서 시작해 갑부가 된 케이스도 존재했다.

채권 변제에 관해서는 주인과 노예라는, 일방적인 신분적 불평등 탓에 노예가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은행』이라고 불리우는 기관이 중재를 맡고 있다. 즉, 주인은 나를 은행에 채권노예로 등록하고 나에게 채무를 지게 한다는 뜻의 서류를 작성한다. 그 후, 내가 채권액과 이자, 수수료를 은행에 입금하면 나는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액수는 대략 금화로 200닢.

형식적으로는 금화 300닢의 정가채권인 소년노예를 주인이 구입하여 학비・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나에게 금화 50닢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 소유권을 나 자신에게 금화 80닢의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계약도 맺고 있다. 여기에다 대략 1년에 4분의 1정도의 이자가 붙는다. 주인이 나를 구입한 가격이 반액 이하인 금화 20닢이었기 때문에, 내가 만약 1년 후에 채무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주인에게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금화 170닢 정도의 이익이 발생하게 된다.

참고로 은화 10닢이 금화 1닢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은화 몇닢 정도로는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채권노예들은 해방되기를 꿈꾸며 일하지만, 각종 명목으로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하게 되며 영원히 채권해소를 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니가 돈을 왕창 벌어오기만 하면, 아무 불평 안해. 부탁이니까 제발 일찍 죽진 말아라」

「부탁받아도 안죽습니다. 아픈건 싫으니까요」

나에게 모음 한글자 짜리 이름을 붙인 인간이다. 그런 말을 할만큼 내게 집착할 리 없다. 내가 죽으면 손해를 계산해 본 후, 냉큼 잊어버리고 말겠지.

「그래서, 미궁은 어땠나? 술안주로 모험담 정도는 들려주라고」

주인은 식어버린 고기 요리를 볼이 미어지도록 입에 때려 넣으면서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지만 한 집의 가장이 쓸쓸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가족 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인들의 말에 따르면, 귀족의 딸을 아내로 삼았지만 결국은 자산가 계층과 귀족간의 결혼이니만큼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귀찮았지만 조금 쯤은 불쌍한 면모도 있고 해서, 나는 주인에게 최초의 미궁 체험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음 모험은 이틀 후가 된다는 말이, 그에겐 조금 불만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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