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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18화 그 토끼

우리는 지하 3층에서 위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 전진했다. 우리가 떨어진 지점 바로 근처에서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지만, 이런건 당연히 무시했다.

모두가 피나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던 관계로 정신적으로 거의 한계에 가까웠지만, 다행히도 우리 중 누구도 부상을 입지 않은 데다 마법 역시 아직까지는 거의 쓰지 않았다. 

아아, 그럼 운이 좋으면 살아 돌아갈 수 있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이없게도 위로 향하는 계단은 손쉽게 발견되었다.

「좋아, 좋다구!」

시그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신중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끄러지기 쉬운데다 오르기도 힘든 십수 층계의 계단을 올라가던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약간 우쭐해진 듯한 헤이모스는 3층 플로어를 향해「당분간은 안올~꺼라고!」라고 즐거운 듯이 나불거렸다.

계단을 전부 다 올라간 우리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모두들 기분이 나아 보였고, 스테아에 이르러서는 신의 가호 덕분이라고 완전히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난리친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네.」

파라고가 경박하게 내뱉었다. 나도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던 지라 그 말에 토는 달지 않았다. 이대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그냥 웃어 넘길만한 사고였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간단히 풀릴 일은 없었다. 이곳은 악의가 넘치는 미궁이다. 그런 사실을, 우리들은 헤이모스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직면하게 된다.



제일 처음, 어둠 속에서 그 마물은 작은 동물처럼 보였다. 조우한 직후, 그것이 거대 쥐의 친척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 쥐는 사람 눈높이까지 뛰어 오르는 일은 없었다. 적들은 높이를 바꾸면서 몸통박치기나 물어뜯기를 반복했다. 숫자는 5마리.

순식간에 전위 세 사람이 각자 한 마리씩을 처치했다. 나는 적의 정체를 간파하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다. 난데없이 동물들 중에, 한 마리의 특징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토끼다!」

나보다 한박자 빨리 파라고가 외쳤다. 통칭 '참수 토끼'라고도 불리우는 이 마물은, 지하 2층에서 어슬렁거리는 초심자에겐 최초의 공포를 안겨주는 존재였다. 남아 있던 두 마리의 토끼가 헤이모스를 향해 동시에 뛰어 올랐다. 첫째 토끼의 공격은 어떻게든 잘 피해냈지만, 두번째 공격은 막지 못했다. 

치명적인 실수.

지금까지 귀를 접어 숨기고 있던 토끼의, 귀를 이용한 공격이야말로 헤이모스가 경계해야 했다. 고속으로 휘둘러진 토끼 귀는, 노린 대로 헤이모스의 목을 포착해, 그대로 잘라 날려버렸다.

농담처럼 높게 튀어오른 헤이모스의 머리는, 카직, 하는 소리를 내며 지면을 굴렀다.

그런데도 루가무는 지체없이 움직여, 그 참수 토끼에게 곤봉을 때려 넣었다. 소형 마물은 공중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채 절명했다. 

전투는, 시그가 마지막 남은 한 마리를 처리해서 끝을 맺었어야 했다. 그러나 시그는 느릿하게 무너져 내려가는 헤이모스의 몸을 바라본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불, 아니면 잠?

귀를 드러낸 채 시그를 향해 뛰어오른 토끼에게, 나는『잠들어!』라고 마법을 걸어, 성공시켰다. 뛰어 오른 상태 그대로 의식을 잃은 토끼는, 그 기세를 죽이지 못하고 시그를 뛰어 넘어 벽에 부딪혔다.

「제대로 하라구!」

그렇게 말하는 루가무는 마지막 토끼를 때려 부쉈다. 나와 루가무를 뺀 3명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린 것처럼, 목이 없는 헤이모스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어떡할거야? 가지고 돌아가?」

루가무는 헤이모스의 목을 가볍게 집어 올렸다. 소생시킬 경우 가능하다면 전신이 갖추어져 있는 편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게 힘든 경우에는 머리만이라도 있으면 어느 정도 손은 가겠지만 소생 자체는 가능하다. 라는, 조합에 부속된 사원 사무관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그래도 금화 1000닢이잖아. 지불 못해.」

나와 루가무는 빚투성이고, 시그는 자유시민이긴 하지만 무산계급인데다 유복하지도 않다. 스테아는 모험에서 얻은 돈의 대부분을 교단에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잠......잠깐 기다려줘. 헤이모스도 동료잖아, 그냥 두고 가지 말아줘.」

겨우 제정신을 차린 파라고가 허둥대며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옆에는 스테아가 울면서 무너져 있었다. 부적에 의한 자기최면이 풀린거라면 이건 위험하다.

「파라고, 너랑 헤이모스는 소생비용 적립해 놨냐?」

시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을 절제한 것인지 억양도 없다.

「아니, 그건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긁어 모을거야.」

고작 한 명의 신출내기 모험자가 긁어 모을 수 있을 정도로, 금화 1000닢은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인생 자체를 담보로 잡히더라도 기껏해야 금화 100닢 정도 빌리는 게 상한이겠지. 게다가 빠른 시일 내에 소생을 실시하지 않아 10일 정도만이라도 지나면, 사체는 소생불가 상태가 된다.

「그럼 머리만이라도 들고 돌아가자. 미안하지만 몸 전체를 옮길만한 여유는 없어. 아, 니가 들어 주라.」

「응.」

처음으로 이름을 불렸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루가무로부터 건네 받은 후, 나는 그것을 배낭 속에 집어 넣었다. 피가 묻어서 배낭 속이 더럽혀졌지만, 그래도 지하 3층에 떨어진 시점에서 이미 그 이상 없을 만큼 더러워졌던 까닭에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소생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적어도 헤이모스에게 무덤은 만들어 줄 수 있다. 시그가 생각하고 있는 건 뭐 그런 거겠지. 예전 동료인 드로이라는 시프의 시체는 그대로 방치해 버렸었기에 무덤도 뭣도 없었다.

「그건 좋지만 말야, 이제 헤이모스 대신 당신이 앞으로 나오는 거겠지?」

루가무가 파라고를 향해 물었다. 전위는 최소 3명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후위까지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만다. 전위와는 달리 후위인 우리들은 무기도, 제대로된 방어구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즉, 우리는 전면에서 벌이는 싸움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만약 전위에 서게 된다면 순식간에 죽고 만다. 

그래도 천옷을 걸치고 있을 뿐인 나나 스테아와는 다르게, 파라고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 나는 맨손. 스테아는 긴 지팡이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을 지지하는데 쓰이는 물건이지 전투용은 아니었다. 반면 파라고는 큼지막한 나이프를 소지하고 있다. 

게다가 체력도 완력도, 빈약한 나나 스테아에겐 비할 바가 못된다. 시그나 루가무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나 다름없겠지만.

「으......으응.」

유사시에 대비해 사전에 협의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젠 그 유사시가 오고야 말았다. 파라고는 우는듯 웃는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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