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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카 사사이의 시대 (1915 ~ 1960년)
아라사카 주식회사는 아라사카 사사이(Arasaka Sasai)에 의해 1915년 초 일본 도쿄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제조업에 주력하던 이 회사는, 2차 세계대전 최대한 이용하여 일본 제국군을 부와 권력면에서 지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사사이는 일본의 패배를 예견했고, 전후 미군정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의 회사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계로 재산을 분산시킵니다. 이후 교토를 제외한 일본의 대도시의 대부분은 계속되는 폭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했고,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은 항복을 선언하는 방송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격을 부정했습니다. 이때 전 일본 제국 해군 중위이자 사사이의 아들인 아라사카 사부로(Arasaka)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병원의 벚나무 숲에서 할복을 시도했고, 그 순간 어떤 환영과 통찰이 그를 강타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벚나무 숲속에서, 그는 아버지가 취한 행동에서 지혜를 보았습니다. 아라사카 가문의 자손으로서, 그 재산은 언젠간 아라사카 사부로의 지배하로 들어올 것이고 이를 올바르게 운용한다면, 일본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위치로 끌어 올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테라스의 후손들은 비록 황제 휘하가 아니더라도, "경제" 라는 또다른 신성 아래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 환영을 본 직후, 사부로는 그의 복부 근육을 반 인치 관통한 단검을 뽑았고, 집안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그날 밤부터 그의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그는 정치학과 경제학, 역사를 계속해서 공부했습니다. 비록 일본 경제와 산업은 폐허로 변했지만, 사부로는 일본이 다시 강하게 우뚝 설 미래를 보았습니다. 군사적인 의미로가 아니라, 경제적인 의미로요. 이 나라는 언제까지고 백지상태인 채로, 적절한 자원을 가지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누군가가 도래하기만을 기다릴 겁니다. 사사이는 전시 산업을 자본화했지만, 사부로의 열렬한 요구에는 반대했고, 아라사카의 재산 중 대부분을 해외 자산과 재산으로 은닉하고 보호하기만 했습니다.
전후, 아라사카 부흥의 시대 (1960 ~ 1994년)
1960년 아라사카 사사이가 사망하면서, 41세의 아라사카 사부로가 아라사카 주식회사의 대표직을 물려받게 됩니다. 이 시점의 아라사카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이었고, 전후의 국제 경제 질서 속에서 막 다시 자리잡기 시작한 기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라사카 사부로는 그의 아버지가 전쟁기간 동안 해외로 빼돌렸던 자본과 자산을 서서히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로는 자신의 과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아라사카 주식회사를 자신의 이상에 맞게 구체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로는 순수한 자본력과 산업력에서 기인한 힘을 쟁취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환영에서 본 것처럼 일본이 세계적인 군사・경제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치와 세계 정치를 배후에서 통제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길도 고된 과업이었지만, 그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열쇠는 정보라는 사실을, 아라사카 사부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주위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정보를 자유롭고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1970년대 아라사카에 보안 부서가 창설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습니다. 아라사카의 이 새로운 사업은 사회 상류층과 기업 인력, 전자 및 컴퓨터 보안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었고, 약 25년 넘게 서서히 발전하면서 아라사카를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회사라는 평판을 쌓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시점에서 이미 아라사카의 경호원들은 전세계 수천 명에 달하는 권력자들과 기업들에게 고용되어 있었고, 아라사카의 침투 방지 솔루션과 컴퓨터 보안 패키지는 수많은 조직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 보안 사업이 아라사카의 제조 부문이나 은행부문에 필적하는, 아라사카 3대 핵심 기둥 중 하나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 학문에 대한 사부로의 헌신은, 그로 하여금 1994년의 세계 시장 붕괴와 미국의 붕괴를 예견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부로는 이미 상당히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부로는 교묘한 시장 조작과 투자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아라사카 주식회사는 세계 경제가 엄청난 추락을 겪는 와중에도, 그 추락을 이용하여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라사카는「대붕괴(Collapse)」가 발발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큰 조직이었지만, 대붕괴 이후로는 엄청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윽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붕괴 후, 아라사카 도약의 시대 (1994 ~ 2020년)
대붕괴 이후 규제가 무너지고 기업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하는 세계는, 아라사카 사부로가 꿈꿔온 해답이었습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오르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이용했습니다. 보안사업을 담당하던 아라사카 시큐리티(Arasaka Security)는, 1997년부터 준군사 계약으로 시장을 전환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홋카이도 북부의 폐기물 지대에 위치한 기업 경비 및 요원 교육 시설에서 세계 최초의 기업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아라사카는 경쟁 관계에 있던 많은 회사를 파괴하거나 흡수했고, 설령 경쟁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사부로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좋은 자산이 될 것 같으면, 그 회사를 무자비하게 매입했습니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아라사카에 의한 일본 정부의 통제는 문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부로는 국회의원의 약 60%를 매수하여 일본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라사카를 제외한 다른 일본 대기업들은 아라사카에 의해 장악된 정치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라사카에 대한 이들의 두려움은 점점 커졌고,「FACS(Far Asian Co-prosperity Sphere)」라는 깃발 아래, 일본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경영통합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들은 사부로에 의해 통제되던 정부에 맞서 싸웠고, 많은 정치인들이 체포되었습니다. FACS는 이후로도 수십년 동안 계속해서 아라사카의 발목을 붙잡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아라사카는 계속해서 다각화되고 더 강력해졌습니다. 아라사카 그룹의 핵심 사업은 여전히 은행업과 제조업, 보안사업이었습니다. 회사 자체는 놀라울 만큼 부유해졌고 튼튼해졌으며, 사부로 그 자신도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원래의 목표를 잊지 않았습니다. 2020년 시점에 이미 그의 연령은 101세였지만, 강도 높은 신체 재구축 수술을 통해 과거 전쟁중에 파괴되었던 그의 팔과 눈은 최신「사이버웨어(Cyberware)」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휠체어에 얽매여 있었고, 도쿄 교외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가족 요새를 좀처럼 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체적 한계는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예전처럼 날카로운 그대로였습니다. 이 시기, 이미 아라사카 사부로는 CEO에서 물러난 상태였고 그 대신 아들인 케이가 명목상 아라사카 그룹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주요 결정과 정책은 여전히 사부로의 재량을 따랐습니다. 사부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를 실현하고 또 그것을 궁극적이고 완전하게 통제하기 위해, 아들을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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