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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사카의 역사: 제 4차 기업 전쟁(Fourth Corporate War)의 배경

「밀리테크(Militech)」가 세계 무기시장의 주역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된 2000년대 중반부터, 아라사카와 밀리테크는 십수년에 걸쳐 세계 무기 시장의 지배권을 놓고 계속해서 분쟁해왔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이 두 회사의 분쟁은 곧바로 상업적인 경쟁으로 포장되어 활용되었습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백논리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라사카와 밀리테크의 영업사원들은 "적 아니면 동지" 라는 태도를 부추겼고 야만적이고 원색적인 반응을 고객들로부터 이끌어냈습니다.

 

즉, 기업이 특정 고객들에게 우리들은 당신의 편이라는 감정적인 호소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객들은 이에 감명을 받아,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한 그 회사의 제품을 기꺼이 더 많이 구입했던 것입니다. 이는 검증된 영업 방식이었으며, 두 회사 모두 이 방식을 애용했습니다. 또한 고객들에게 라이벌 회사의 존재를 "우리의 삶"에 대한 위협이라고 계속해서 선전해왔습니다. 이 경쟁의 어두운 부분 탓에, 아라사카의 총수였던 아라사카 사부로(Arasaka Saburo)는 밀리테크의 CEO였던 도널드 런디(Donald Lundee)를 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비합리적이게도, 이런 성향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결국 아라사카 사부로는 밀리테크와 런디가 그를 방해하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부로는 밀리테크가 세계정복을 위한 아라사카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으며, 20세기 미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시도하고 있다는 은밀한 의혹을 품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불구로 만든 심각한 상처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과 그 후에 이어진 미군정 등, 그에게 모든 굴욕들을 가져다 준 것이 그들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점점 그의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아라사카와 밀리테크 사이의 전쟁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은 아닙니다. 4차 기업 전쟁 훨씬 이전부터 실질적인 분쟁은 경제 측면에서 발생해 왔습니다. 아라사카 측이 무기 매입에 자산을 투입하면, 밀리테크는 보안 자회사를 계속 늘림으로서 대응했습니다. 몇년 동안, 두 회사 모두 첩보활동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대방의 진영 깊숙이 침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2021년 아라사카의 아시아 지역 매출액이 밀리테크를 넘어서면서, 밀리테크의 지불능력과 긍지에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이때 발발한 것이, 4차 기업전쟁이었습니다. 

 

 아라사카의 역사: 그림자 전쟁

2021년,「IHAG(Internationale Handelsmarine Aktiengesellschaft)」라고 알려진 해양법인이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이 때,「CINO」「OTEC」두 회사 모두「IHAG」를 인수하려 했지만, 양 측의 매수력이 너무나도 동등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상대방의 자원을 축소하여 IHAG 주식 취득을 방해하기로 결정했고 주가 조작이나 경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효타는 줄 수 없었기 때문에, CINO는 아라사카를 고용했고 OTEC은 이에 대항해 밀리테크를 고용하게 됩니다. 아라사카와 밀리테크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준군사 기업이었으며, 군사 계약 분야에서 수년 동안 경쟁해온 라이벌 기업이었습니다. 이 시점의 아라사카는, 이 분쟁을 밀리테크의 세력을 약화시킬 기회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막상「4차 기업 전쟁(Fourth Corporate War)」이 벌어지자, 사부로든 런디든 서로를 계속 자극하고 싶어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양측 모두 결정적인 승리를 갈망했고, 너무 큰 선제공격을 날렸다가는 상대측이 한발 물러서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느 쪽도 시장과 정부의 보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가속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큰 규모의 전쟁은 전세계 정부를 화나게 할 것이고, 이러한 분노는 이 이 두 메가코프의 사업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전쟁이 지속되면서, 사부로와 런디는 보다 직접적으로 작전 수립에 관여하게 되었고, 마치 실시간 체스 게임처럼 첩보전과 국지전이 오가며 서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자 전쟁이 중반을 지나면서 전쟁이 점점 고조되자, 전셰계의 정부들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이제 완전히 분명해졌습니다. 논리적인 해결책은 이런 정부들이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분쟁을 벌이는 기업들을 상대로 싸움을 그만들 것인지, 국유화를 당할 것인지 양자택일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밀리테크와 아라사카는 강대했고, 부유했으며,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불발되었으며 그저 양사가 전쟁을 계속하도록 지켜볼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두 회사 모두 전쟁의 파괴행위로 인한 불만을 완화시키기 위해 로비스트를 풀타임으로 고용했으며, 또 이 메가코프들에게 종속되어 있거나 의존하고 있는 사업체들 역시 이 로비행위에 가담했습니다.

 

 

 아라사카의 역사: 열전

그러나 6월에 이르러 열전이 발발하자, 더는 되돌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라사카 사부로와 도널드 런디는 글러브를 벗고, 서로의 조직을 완전히 패배시킬 요량으로 풀스윙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두 회사 모두 전쟁에 너무 깊숙이 관여한 나머지, 전쟁을 멈추거나 물러선다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미 양쪽 모두 대중의 평판은 잃어버릴대로 잃어버린 데다, 만약 어느 한 쪽이 그렇게 한다면, 불리하게 체결될 협상안 때문에 지금까지 구축해온 모든 시장을 빼앗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이을 손해배상 청구는 두말할 것도 없지요.

또한 양측이 지금까지 십수년 이상 쌓아오던 수많은 군사적 자산들-수만 명 이상의 병력과, 극도로 진보한 수송 및 물류 인프라가 결합되면서, 아라사카와 밀리테크 간의 전투는 전 지구적인 규모로 벌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들은 국경내에서 이들끼리 벌이는 분쟁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도시가 불타올랐고, 도쿄, 요코하마, 워싱턴, 시카고, 나이트 시티(Night City) 같은 주요 도시들마저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밀리테크와 아라사카가 아무리 막대한 금액을 로비에 퍼붓는다고 한들, 정부들이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기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미군과 주 방위군이 전국적으로 경계태세에 돌입했고, 일반 군부대 역시 대기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미 공군은 군사적 자산을 전쟁 대비 상태로 전환했고, 서반구의 낮시간 동안 저궤도 영역을 포함한 주간 정찰을 실시했습니다. 하와이처럼 지정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에서는「계엄령(Martial Law)」이 선포되었습니다. 일본 정부 측은 아라사카의 자산에 대한 공격이 감행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결론지었고, 자위대를 경계상태로 배치시켰습니다. 그러나 가장 명확하고, 올바르게 행동한 것은 유럽이었습니다.「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는 아라사카 유럽 지부를 국유화하여,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자원을 차단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아라사카 사부로의 반항적인 아들이었던 아라사카 요리노부(Arasaka Yorinobu)가 건네준 결정적인 정보 덕분에, 국경 내에 존재하는 아라사카의 자산을 국유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 열전기간 동안, 회사 운영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 것은 사실 사부로가 아니라 아라사카 케이였습니다. 사부로는 전쟁으로 인한 보안상의 이유로 은둔하고 있었고, 아라사카 케이가 아버지의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일상적인 회사 운영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결정도 모두 아라사카 케이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밀리테크(Militech)」와의 전투를 다른 사업 운영과 별 다를바 없이 보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라사카의 전통에 따라 그는 자신의 승리만을 바라보았으며, 전쟁을 멈추려는 어떠한 노력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라사카의 직접적인 공세를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라사카 케이는 승리를 위해 주요 자산마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다나카 우보(Ubo Tanaka) 장군과 직접적으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 아라사카가 패배하게 된다면, 아라사카 재벌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은 그의 비상계획 뿐이었습니다. 결국 아라사카의 유럽 지부도 일본 국내 자산도 전부 정부에 의해 국유화당하자, 남은 전선은 미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트 시티에 있던「아라사카 타워(Arasaka Tower)」도 밀리테크의 공작부대에 의해 소형 핵폭탄으로 파괴되었고, 아라사카 케이는「소울 킬러(Soulkiller)」를 이용해 자살하게 되면서 4차 기업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아라사카의 역사: 제 4차 기업 전쟁 이후

종전 후, 아라사카 케이는 죽음을 맞이했고 당시 미 연방정부의 크레스 대통령은, 이 핵폭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밀리테크가 아니라 아라사카를 비난했습니다. 미 대통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상황을 이용하여 아라사카를 악마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라사카의 미국 내 운영 헌장은 즉시 취소되었고, 아라사카의 직원들과 이사진들은 테러리스트로 선언되었습니다. 이들의 자산은 압류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당했습니다. 아라사카의 4차 기업전쟁 참전은 일본 정부를 거의 무너뜨릴뻔 했습니다. 아라사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 일본 정부의 체면이 가까스로 차려질 수 있었습니다. 아라사카는 이후 10년간 일본 국외 활동을 제약당해 일본 한정 법인으로 전락했습니다. 

4차 기업 전쟁 패전 이후, 아라사카는 일본 국내외적으로 많은 자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10년 동안은 일본 국내에서만 기업활동이 허가되었으며, 종전 이듬해부터는 아라사카 하나코가 이끄는 키지, 아라사카 미치코와 그녀와 동맹한 미국 정부가 이끄는 하토, 마지막으로 요리노부가 이끄는 반항적인 세력인 타카의 3대 파벌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내분 끝에, 분쟁은 종식되었으며 아라사카는 종전과 같은 세력을 서서히 회복시켜 나갔습니다. 미국의「통일 전쟁(Unification War)」기간에 이르자, NUSA와「자유주(Free States)」측이 대결할 때, 아라사카는 나이트 시티를 지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망을 얻게 되었고 2070년 당시 시의원이었던 루시우스 라인(Lucius Rhyne)의 요청에 따라 나이트 시티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라사카의 역사: 2077년

2077년 기준으로, 아라사카는 일본에 기반을 둔 가족회사로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거대 기업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기업 보안, 은행 및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라사카제 무기나 차량은 경찰이나 보안병력들이 많이 찾는 편이죠. 아라사카는 통일 전쟁 이후, 본격적인 독립 도시 국가로 부상한 나이트 시티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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