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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전화 세줄요약>-----------------------------------------
잠이 든 줄 알았지만 마나축적은 되어 있음.
난 천재라 벌써 1클래스 마나를 획득함.
소설내용상 적들이 많아, 일단 8클래스를 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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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는 예정대로 아침 일찍 찾아왔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까만 가죽 가방을 등뒤로 동여맨, 금발의 미소년이었다. 그는 내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엘프 장로 스안드란의 손자였다. 액면가로는 아레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나보다도 훨씬 연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어리다' 였다. 당연히 물리적 연령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그의 표정, 말투,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되고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만해보였고, 그랬기에 미숙해 보였던 것이다. 마중을 위해 현관문을 열자 마자, 그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내 외모가 선남선녀 일색인 엘프들에 비하면 오크 얼굴 수준으로 혐오스럽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초면부터 그런 반응인 건 실례다. 그러나 나는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가볍게 인사치레를 주고 받은 후 우리는 탁자에 둘러 앉았다. 톨루핀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 엘프의 딱딱한 표정은 오직 아레트를 향할 때만 느슨해졌다.
작업 과정은 단순했다. 나는 케이 아헨다렉의 마법론을 소리내어 읽는 역할을 전담했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일지 몰라도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원문이 아헨다렉식 문자로 쓰여 있는 만큼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읽을 수는 없었고, 반드시 머리 속에서 한 차례의 변환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가 심사숙고하며 마법론을 엘프어로 낭독하면 그 내용을 속기 담당이 종이에 받아 적는다. 속기는 두 엘프가 1시간 단위로 교대로 담당하며 쉬는 동안에는 잉크 교체 등의 업무보조를 하거나 회복마법을 사용해 팔의 피로를 풀도록 했다. 식사 등의 개인적인 용무도 그 자투리 시간에 보게 했다. 업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별도의 중간 휴식 없이 풀타임으로 12시간을 달린다. 언뜻 보면 조금 하드해 보이는 스케쥴일지 몰라도 만년 과로에 단련된 나로서는 가벼운 주말근무 수준의 노동강도였다.
그러나 두 엘프에게는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다. 교대 근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를 지나자 현저히 지친 듯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고, 종업시간이 다가오자 조금씩 눈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업무 종료와 동시에 작업중인 탁자에 그대로 쓰러졌다. 두 엘프는 그 후 한참 동안 죽어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헬쑥해진 톨루핀은 바래다 주겠다는 내 제안도 마다한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떠나갔다. 그나마 상태가 비교적 멀쩡한 아레트조차도 눈 밑에 선명한 다크서클이 드러나 있었다.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를 보며 예쁜 얼굴에 힘없는 미소를 지어 올렸다.
"회복 마법 때문에 그래요… 회복 마법은 결국 신체의 자연회복력을 끌어올리는 거니까, 반대급부적으로 피로가 동반되는 거죠. "
무기력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마법도 결코 만능이 아님을 실감한다. 회복 마법이라고 해도 마법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낫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회복 마법의 기능은 원래부터 인체에 존재하던 회복기능을 일시적으로 도핑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상처를 수복시키고 가벼운 질병을 물러나게 한다. 하지만 환부를 봉합하거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신체이니만큼, 그에 동반되는 에너지도 체내에서 자체 조달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피로가 급증하는 것이다. 또 마찬가지의 이유로 자연 회복으로는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중병이나 신체가 훼손된 경우에는 회복 마법이 아닌 다른 수단에 기대야만 했다.
・ ・ ・
다음날에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물론 아침에는 기세 좋게 시작해도 점심을 지나 오후로 접어들수록 두 엘프의 기력은 떨어지기만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탁자에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이틀째인 만큼 작업의 요령을 잡고 익숙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회복마법의 사용 빈도가 줄어든 것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번역 작업은 아직까진 이렇다할 풍파없이 순항중이었다. 일정으로는 첫 일주일 안에 속기번역 작업을 끝낸 후, 다음주부터는 기록된 내용을 점검하면서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없나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내 마법 지식은 아직 턱없이 빈약하기 때문에, 확인 작업은 아레트와 율리엔 장로 두 사람이 메인이 되어 진행하기로 했다. 단, 원문과의 대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나도 동석한다. 즉, 요 일주일 동안 일이 어떻게 굴러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정이 크게 변동할 수도 있었다.
"어이, 인간"
작업 개시 사흘째 저녁, 아레트가 식사를 가지러 자리를 뜨자 톨루핀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2클래스 바람 계열 완전 주문에 대한 설명을 낭독하고 있던 때였다. 조용히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니, 그의 오른손은 더 이상 펜대를 잡고 있지 않았다. 나는 씁쓸하게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하찮은 일로 타임로스가 생기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네가 잘 모를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아레트님께 손 대지마라. 손 대면 죽여버린다."
소년 엘프는 오연하게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마을 엘프들 입장에선, 아르테미스 제도 때문에라도 아레트는 순결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화녹옥을 도난당한 현시점에서는 무의미한 제도였지만, 그래도 언젠가 되찾을 것이란 희망은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도 톨루핀의 태도는 조금 이상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낸 감정은 적의에 가까운 색깔이었다. 그것이 좀 더 본능적인 뭔가라고 직감하고는, 나는 곧 진짜 전말을 이해했다. 입가에는 비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너, 아레트 좋아하는구나?"
"그런거 아냐!! 뚫린 입이라고 맘대로 지껄이지마!!"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완강히 부정하는 톨루핀. 그렇지만 그런 주제에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어 있다. 뾰족한 귀끝까지 빈틈없이 새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하는 모습은 어린아이 그 자체였다. 좀 더 빈정거리기로 했다. 나는 어린아이를 싫어했다.
"고백해보지 그러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정을 표백한 채 심드렁하게 말을 건넨다.
"…입닥쳐, 인간! 너야말로 아레트님께 더러운 욕정 품지마!"
이제는 육두문자까지 써대는 소년 엘프의 격한 반응을 지켜보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아레트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은인에 가까운 포지션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감사해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감정은 확실히 연애적인 무언가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만약 그녀와 서로 사랑에 빠지는 대가로 눈 앞의 소년 엘프의 원한을 산다고 하면? 나는 두말할 것 없이 그 사랑을 포기할 것이다. 그 정도로 가볍다. 엄청난 미인이고 관심이 가기는 하지만 나는 애초에 연상이 취향이다. 이성적인 감정을 품을 리가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말고 똑똑히 잘들어. 난 애초부터 연상이 좋다고…"
자기가 말해 놓고도 뒤늦게 그게 멍청한 말임을 눈치챘다. 아레트가 엘프란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화녹옥의 비호가 없더라도 엘프의 평균 수명은 200살 언저리라고 했다. 겉보기로는 열 일곱 정도로 보이겠지만 실제 나이는 그것의 두배 이상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아레트는 나보다 연상으로 취급해야 하나? 외모적으로는 거의 열살은 아래인데? 나는 잠시 갈팡질팡 혼란에 빠지게 되었지만, 곧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눈치채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작업에 복귀했다. 대단찮은 말다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껄끄럽고 착찹한 기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셋째 날의 작업을 마쳤고 잠자리에 들었다. 약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트러블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진한, 과일 향이 풍겨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집안은 아직 깜깜했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져봐도 새벽이 온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늘은 켜켜히 쌓인 층운에 가려져 있어서, 별빛은 엿보이지 않았다. 무거워진 눈꺼풀에 의식이 풍화되기 시작한 그때, 농후한 메론 향기가 고개를 들었다. 긴 녹색 머리카락이 내 팔뚝 안에서 물결쳤다. 손끝을 움직여 끄트머리를 만져보니 비단 같은 감촉이 손에 옮았다. 파르르 하고 긴장에 떠는 그녀의 기색은 한박자 늦게 찾아왔다.
"들었어요?"
내 품에 착 달라붙어 있는 아레트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스스로도 자조한다. 그녀는 대답 대신 얼굴을 가까이 해왔다. 창백한 피부와 갸날픈 턱선, 그리고 길고 정교한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피하지 말아요"
내 기색을 눈치채고,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뒤늦게 몸을 밀착해오는 아레트. 새하얀 두팔이 내 목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등 뒤로는 살짝 덜 여문 유방이 문질러졌다. 부드러운 여성의 감촉에, 나는 아랫도리의 이변을 느끼면서도 평정을 가장했다.
"지금 아레트의 그 마음은 호기심이에요.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몸을 섞을 순 없어요."
가능한한 냉정하게 말했다. 저 편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본의였다. 하지만 본의에만 매몰되어 완강한 채 있을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한 번 짓밟힌 꽃은 두번 다시 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괜한 오해가 풍기기 전에 말을 이었다.
"근데… 저도 사실 당신에게 관심 있어요. 이것도 아직은 호기심이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아레트 쪽을 향해 그녀와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이목구비는 동화 속 요정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꽃잎을 닮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치아가 비쳤다.
"그러니까 저는 아레트와 정식으로 교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키스를 했다. 입술, 뺨, 이마. 쪼아먹듯이 얼굴 전체에 입을 맞춰왔다. 눈물이 맺힌 눈시울에는 계속해서 비취색 물방울이 흘러넘쳤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안았다.
그리하여, 아레트는 나의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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