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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8화 동양방주
시험이 끝난 후에는 으레 강렬한 피로가 찾아오는 것은 누구나 잘 알테지만, 미궁내 환경은 그런 걸 고려해줄 리가 없었다.
「조심하게나. 이샤르를 쓰러뜨리고 귀환하던 도중에 전멸한 파티도, 나는 본 적이 있다네. 애초에 방금 전 싸움도 말이야, 전위 두 사람은 낙제 수준이야」
브란트의 질타에, 들떠 있던 파티의 분위기가 시들어버린다.
「나도 한가하지는 않아서 말이지, 번거롭게 지적까지는 안하겠는데, 적어도 지상에 귀환할 때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말게나」
말이 끝난 순간, 표현하기 어려운 불쾌함이 느닷없이 브란트를 덮쳐왔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어둠으로 채색된 긴 통로 안쪽에서 무언가가 이쪽을 보고 있다. 급조라고는 해도 달인에 가까운 학생들도 이변을 느끼고는 지체없이 전투 준비를 시작한다.
「브란트 선생님, 어떻게 된겁니까?」
전사 한 명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오랫동안 미궁에 잠입해 있으면 감각이 예민해지지만, 학생들은 아직 브란트만큼 감각이 강화되어 있지 않았기에, 브란트가 느낀 것을 이들은 느끼지 못한다.
「괴물이 있네...... 이런 얕은 층에 원래 있을리가 없는 거물이야」
미궁에서는 지하로 가면 갈수록 공기에 마력의 농도가 높아진다. 때문에 오랫동안 미궁에 살고 있는 괴물들은 아랫층을 향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잡아먹고 스스로를 변질시켜나간다.
그 반대 경우는 거의 없으며, 깊은 층에서 다른 이들에게 패배한 결과 일시적으로 상층으로 이동하는 놈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깊은 층에 익숙해진 존재들은 마력이 옅은 상층의 공기를 불쾌하게 느끼기 때문에 곧바로 심층으로 돌아가고 만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무수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 미궁의 특징이었다.
경종이 울려퍼지는 브란트의 뇌내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떠올랐다. 도망칠 것인가. 먼저 공격을 가할 것인가. 학생들만 먼저 도망치게 하고 자신은 시간을 끌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을 미끼로 삼은 채 자신만 혼자 도망갈 것인가.
도망치는 건 안된다. 완전히 포착당해버렸다. 진형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습격당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만약 적대하지 않고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존재라면, 공격을 개시한 시점에서 전투는 불가피해진다. 학생들만을 도망치게 하는 경우, 그들은 지도자가 없어지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기 혼자 먼저 도망치면? 학생들이 그대로 남아 대신 싸워준다고 하더라도 학생들 수준으론 저 괴물의 발목을 잡는 것도 불가능할 테지. 결국 태세를 갖춰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면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모면할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엔 없다.
쓱, 하고 어둠 속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대머리의 거한. 동양방주다. 종합 사무소에서 읽은 수배서를 떠올렸다. 맨손으로 병사들 십수명을 살해했다는 괴물이다.
「이런, 사람이 있었는가?」
동양방주는 온화한 말투로 일행에게 말을 걸어왔다. 바짝 긴장한 브란트의 태도에 비하면, 등장한 자는 대화가 가능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은 잠시 마음을 놓았다. 아마추어 놈들!
브란트는 내뱉어버리고 싶어진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평정을 가장한다. 인간의 말을 하는 괴물 따위, 10층보다 더 깊은 층에서는 드물지도 않았다.
상층에서는 송사리에 지나지 않는 작은 괴물이나 수인 같은 부류마저 마력이 충분히 농후한 심층에서는 말을 건내온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혼자서, 무기도 없이 경장으로 걸어다니는 존재라면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는 브란트라고 한다. 이들의 인솔자다. 귀하는 꽤나 멀리서부터 이쪽을 보면서 오신듯 한데, 무슨 용무인지?」
브란트는 적의를 보이지 않는 최대한의 표현으로서, 세검의 칼끝을 동양방주의 정중앙에서 약간이나마 옆으로 돌린 상태였다.
「아니, 길을 잃어서 불안해진 마당에 누가 있었으니, 잠시 들른 것이요.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혹시 길을 아시오?」
「여기서부터 곧장 직진하고 막다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바로 계단이 있소. 참고로 우리들이 나온 문 앞에는 강력한 망령이 있으니, 들어가지 않는게 좋소」
그렇게 말하고, 브란트는 이샤르의 현실(玄室)을 턱으로 가리켰다.
「흠, 그런가. 그럼 기왕 여기까지 놀러온 거, 그 망령이라는 거나 만나러 가볼까나?」
동양방주는 대담하고 뻔뻔스레 웃었다.
「그런가? 충고는 했네. 우리는 이제 용무가 끝났으니 물러나도록 하지」
「음. 확실히. 그런데 댁은 꽤나 쓸만해 보이는데. 어떤가? 나랑 대련이라도 하지 않으리?」
갑작스레, 동양방주의 존재감이 폭발했다. 투기(闘気)라고도 할만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거한의 체구를 더욱더 크게 보이게 했다. 학생들 모두는 그 기운을 얻어 맞더니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흠, 괜찮겠지. 그 대신 내가 지더라도 학생들에겐 손을 대지 않기로 약속해 주길 바라오」
「좋소. 병아리를 찌그러뜨려 먹을 만큼 배는 고프지 않으니」
이걸로 좋다. 적어도 학생들은 살아 돌아갈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져서 죽어도 모험자 조합에는 탐색과 소생 비용을 적립해두었기에, 운이 좋다면 부활이 가능할 지도 몰랐다.
「갈!」
브란트의 목소리에, 반실신 상태였던 학생들이 제정신을 찾았다.
「자네들, 메달을 떨어뜨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돌아가게나」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도중에 죽게 될지도 몰랐지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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