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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 73화 흡혈귀


'바이론'은 아득한 옛날, 자력으로 흡혈귀가 된 진조였다. 그는 내킬 때마다 흡혈귀 사태를 일으키면서도 인간을 멸망시켜 버리지는 않도록 방랑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샤르' 라고 이름을 밝힌 마법사의 청을 받고 그의 실험에 동참했던 것이 불운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었다.



미궁의 지하 10층에 위치한 이샤르의 현실(玄室)에서, 바이론은 혼자서 초조해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이샤르도 부하 흡혈귀도 없다. 그들은 모험자들이 문을 열 때만 생성된다. 모험자들에게 승리하여 침입한 놈들을 몰살시킨 뒤에는 사체조차 남지 않고 함께 사라진다. 모험자에게 패배당해도 똑같이 소멸한다.

그들은 미궁에 우겨 넣어진 자동기계처럼, 같은 동작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바이론 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조의 특성 때문에 간단히는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이론을 진심으로 없애버리려 한다면 햇빛이 필요하다. 햇빛이 비쳐들지 않는 미궁의, 그것도 지하 10층에 봉인되어져 있는 바이론은 어마어마한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소멸당할 일이 없었다.

바이론의 몸은 산산히 부서지더라도, 불태워져 재로 변해버리더라도 짧은 시간내에 복원되어 원래대로 돌아온다. 당연히 그 때쯤이면 실내에는 아무도 없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 이샤르가 갈망하고 있었던 것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비술이었다. 실전된 마술 지식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었던 바이론의 협력이 있었으니 그 실험은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당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컸지만, 바이론에겐 기나긴 삶 속의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됐든 좋았다.

공간에서 맴도는 마력을 고형화시키는, 이샤르의 독자적인 기술로 생성한 작은 원반을 재료로 시공을 비틀어 이공간으로부터 무한한 에너지를 퍼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바이론은 비틀려버린 공간에서 지금도 끝없는 감금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공간이 비틀려진 영향인지, 안쪽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았고 파괴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탈출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모험자를 매료시켜 문을 열게 한 적도 있었지만, 권속으로 전락한 모험자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투종료 후에는 이샤르나 다른 흡혈귀들처럼 사라지고 두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다. 모험자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린 후, 순식간에 튀어나가 보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 바이론을 되돌려버렸다.

구현화된 순간을 노려 부하 흡혈귀들이나 이샤르를 붙잡아 밖으로 던져 본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실내로 들어온 자가 이샤르를 무찔렀을 때만 이 닫힌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그 모험자들도 이샤르의 원반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을 들이는 수 밖에는 없었다.

벽을 통과하는 흡혈귀의 비술을 동원해 자신의 마력을 천천히 실외로 스며들게 하여 내보낸 후, 복도에서 박쥐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미궁을 날아다니던 박쥐가 또 한번 벽을 통과해 돌아올 때까지는 며칠이나 걸렸다. 그 후 이것을 체내로 되돌리면, 그제서야 바이론은 실외의 상황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보다 먼저 문이 열려버리면 이샤르가 부활하고 모험자들과의 전투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집중력이 끊겨버리고 사역마의 제어가 힘들어져서 끝내 마력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또, 시간이 있더라도 사역마가 미궁을 배회하던 마물에게 포식당하거나 모험자들에게 죽임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사히 돌아올 확률은 수십 분의 일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무한히 많은 것이 불사자의 강점이다.

백번이든 천번이든 만번이든, 필요한 만큼 반복하면 된다.

바이론의 경험상, 슬슬 다음 도전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그리고 사역마도 이제 곧 귀환할 타이밍이었다. 실패는 몇번이든 거듭해도 상관없지만 기왕 잘될 것 같은 분위기 일때는 역시 조급해진다.

서서히 벽을 통과해 머리부터 들어온 박쥐를 바라보며 애가 타서, 벽에서 발을 떼어내기 무섭게 손으로 잡았다. 키이키이 하고 울부짖는 박쥐를 머리부터 물어뜯는다. 그 맛에, 힘의 열화를 통감하게 된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모험자의 피를 빨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투 중에 빨려고 하면 자아가 없는 이샤르나 말을 안듣는 부하 흡혈귀들이 모험자들을 전멸시키고 전투 종료와 동시에 그대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또 모험자들 중에서도 숙련자가 오면, 약해진 상태의 자신으로서는 일방적으로 유린당해 정신이 들면 이미 전투가 끝난 상태일 때도 다반사였다.

바이론은 이렇듯 영양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결식 흡혈귀였다. 식사만 충분했다면 어지간한 모험자들 따위, 간단히 섬멸시킬 수 있다. 최근, 단신으로 덤벼들던 동양방주 급은 만전 상태로도 조금 버겁겠지만, 평범한 모험자들을 상대로는 지금처럼 약해진 상태조차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사역마가 보고 온 상황을 머릿 속에 넣었다.

「재미있군」

어쩐지, 평소보다 도전자들이 드물었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신앙의 문제로 인한 다툼으로 모험자 전체에 동요가 퍼져 있었다. 보통이라면 덤벼들어올만한 레벨의 모험자들도 태세를 정비하는데 분주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동양방주가 선생기사라고 불리우는 검사를 죽였다는 듯했다.

총괄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당분간은 탈출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바이론은 현실(玄室)의 구석에 숨겨 두었던 이샤르의 원반을 끄집어냈다. 모험자들이 영광의 메달이라고 칭하는, 이샤르를 토벌한 징표로 삼는 물건이다. 모험자를 섬멸한 직후, 이샤르가 사라지기 직전에 잽싸게 빼돌린 메달은 이미 20개가 넘었다.

마력을 굳히고 압축시켜, 물질화한 메달에는 그에 상응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 메달만은 공간을 자유롭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동서양의 마술에 통달한 불사신 흡혈귀는, 현실(玄室)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유희를 즐기며 입술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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