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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74화 흡혈귀Ⅱ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를 입수한 것은 컸다.

바이론은 벽에 손을 대고 마력을 방출했다. 공간을 통과한 마력이 실외에서 사역마의 형태를 이룰 때까지 약 하루. 그래도 사역마가 귀환할 때까지는 한순간도 집중을 풀 수 없다. 허나, 바이론에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자력으로 흡혈귀로 변모한 이래, 맹렬한 고통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다.

흡혈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이미 저주였으며, 멸망해 없어질 때까지 길고 긴 악몽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바이론에게 있어서 최대의 고통은 목적 없는 지루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에 말려들게 한 이샤르에게는 증오와 함께 감사의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목적은 명백. 이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

이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이 근처 나라 몇 개국에 흡혈귀 사태를 일으켜 멸망시켜 주리라고 결정한 상태였다. 목표 달성이 어려운 만큼, 승리의 미주 역시 달겠지.



마력이 벽을 뚫고, 사역마의 형태를 모방한다. 바이론은 이샤르의 메달을 문을 향해 튕겼다. 전력으로 튕겨내진 메달은 문의 틈새를 누비는 것처럼 복도로 빠져나왔다. 복도에서 흘러나온 사역마에게는 그 메달을 줍도록 명령해 두었다. 마력의 고정, 물질화는 이샤르만이 가능한 비술이겠지만 해동하는 것쯤은 바이론도 가능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바이론 자신에게도 예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것을 반복하다보면 상황은 더욱 변화한다. 영원히 계속하면서 조금씩 호전되면 된다. 그것이 바이론의 가치관이었다.



그저 날아다닌다는 한정된 기능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을 사역마에게, 이번에는 다른 행동을 주입해 놓았다. 스스로 발생시킨 직후, 현실(玄室) 내에서 내보낸 메달을 붙잡는 것. 그리하여 제일 처음 입력시킨 술식으로 이것을 해동, 흡수한다.

한순간 세계가 변화했다.

사역마는, 아니 사역마였던 '그것'이 마력에 의해 수육하고, 마력에 의해 사고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단순한 자동기계가 아니다. 스스로의 자아를 지닌 생명체로서 재탄생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유사 생명체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자의 모습을 모방하며 두뇌를 급속도로 움직였다.

이어서 메달 3개가, 현실(玄室) 밖으로 튀어나왔다. 유사 바이론은 그 3개를 모두 줍고는 집어 삼켰다. 뱃속에서 한 개를 해동시킨다. 체내에서 질주하는 방대한 마력이 흐릿하던 '그것'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어냈다. 이제 더이상 일개 사역마가 아니었다. 창조주가 봉인당해 있는 지금, 스스로를 강대한 마물의 왕이라 자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유사 바이론은 만족스럽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자 미궁 건너편에서 3마리의 거인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위 공간을 썩게 하는 독을 지닌 거인이었다. 힘을 시험해 보기에는 딱 좋았다.

「독의 거인놈들. 내 탄생을 기념해 찢어 죽여주마!」

유사 바이론은 거인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수일 후, 바이론은 돌아온 사역마를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마물의 동향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독의 거인들에게 도전한 후, 선전은 했지만 결국 얻어 맞아 죽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바이론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닮아 부주의한 녀석이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이름이라도 붙힐까?

바이론은 혼자서 이리저리 생각했다. 이름이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창조주인 자신과 닮아버리고 말았다.

바이론은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자신과 닮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성별도 여자가 좋겠지. 미궁에서 관측한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의 외관을 부여해 주마. 이름은 뭐, 편의상 붙이는 거니까 간단한게 좋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바이론은 다음에 짜낼 마력에 이런저런 행동양식을 덧붙였다.

그리하여 바이론은 새로운 마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몇번이든 다시 할 수 있다는 강점이, 바이론을 반대로 부주의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불사신이 되어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군림해온 밤의 제왕은, 더 이상 긴장감과는 연이 없었다.



1호는 스스로의 수육과 존재 강화를 위해 마력의 메달을 6개 사용했다.

녹색의 긴 머리카락, 심플한 원피스로 몸을 감싼 그 외견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아버지 바이론으로부터 하사받은 메달은 7개나 뱃속에 남아 있었다.

「으으음, 위대한 아버지의 이름은 바이론. 내 이름은 1호. 그리고 성별은 여자.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지?」

마법생물 1호는, 자기 목적을 기입하는 걸 잊어버린 창조주에 대해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어차피, 좋을 대로 살라는 거겠지」

그리하여, 바이론의 전재산 중 대부분을 투입한 투자는 실패로 끝장났다. 1호는 아버지가 봉인되어 있는 현실(玄室)의 문을 잠시 쳐다보더니, 안녕, 이라고 말하며 떠나갔다.



지하 10층쯤 되면 미궁에 순응한 마물로 전락한 모험자들도 배회하고 있었다. 1호가 조우한 것은 그런 영락한 모험자 중 한 명이었다. 지하 10층이면 거의 재해에 가까운 힘을 지닌 마물들이 활보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홀로 걸어다니는 검사 역시, 거의 마물이나 다름없었다.

「어머, 맛있어 보이네」

1호는 대수롭지 않게 튀어나가, 그 검사의 얼굴에 손을 댔다. 아버지처럼 목덜미에 이빨을 들이댈 필요 따위 없었다. 손을 댄 것만으로도 검사의 정기는 모조리 1호에게 빨아들여졌다.

검사는 눈을 뜬 채, 그대로 지면에 쓰러졌다.

1호는, 흘러들어온 정기가 생각보다 맛이 없자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배는 채울수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본 식사가 끝났다. 1호는 식후 운동 으로 시체를 가지고 놀았다. 흡혈귀로부터 태어난 그녀에게 시체는 장난감이자 무기이자 갑옷이었다. 마력을 부어넣어 검사를 소생시킨 후, 장난삼아 명령을 내린다.

「1층까지 올라가면서 인간을 전부 몰살시켜 줘」

강력한 힘을 지닌 마물들이 차례 차례 상층으로 향하게 되면, 상당히 당황하겠지. 미궁 전체에 퍼질 혼란을 생각하며 미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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