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반응형

「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95화 무제(無題)


지하 7층까지 내려오니 긴장감이 한바퀴 돌아온 건지 공포심이 마비되어 버렸다.

「저건 키메라네. 육체적으로 이것저것 붙어 있지만 그걸 엮어놓고 있는 건 슬라임의 일종이야. 그 슬라임을 정확히 처치하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버린단다」

우르 스승님의 온화한 말투도 마비된 공포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지도 몰랐다. 그 홀에서 말대꾸를 한 것을 지적당하리라 생각해서 조마조마했었는데, 그녀는 표면상으로는 변치않는 태도로 나를 대해주고 있었다.

그런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것은 2마리의 마물로......아니, 몇 마리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확실히 2마리지만, 머리는 제각기 4개와 5개씩 붙어 있었다. 원숭이에 염소, 쥐에 소, 그리고 뱀까지 합세해서 2마리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 키메라 중 한 마리를, 나프로이가 철퇴로 깨부쉈다. 머리와 동체가 몇 개나 사방에 흩날렸고 남은 몸도 힘을 잃었다.

남은 키메라 한 마리에게는 노라와 브란트가 달려들었고, 코사메가 투석으로 원호했지만 급소에는 맞추지 못했던 까닭에 키메라는 도망치듯 뒤로 크게 후퇴했다. 목은 몇 개쯤 잘려 있었고 동체는 투석을 얻어맞아 비틀거렸지만 전의는 상실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브란트가 마무리를 지으려 뛰어든 순간, 키메라는 덥수룩한 양의 가슴팍에서 비장의 한수를 꺼내왔다. 브란트를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것은 드래곤의 머리였다.

순간, 브란트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브란트는 순간적으로 양팔로 얼굴을 감쌌지만, 용의 숨결이 지근거리에서 퍼부어져,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나무조각을 서로 비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발해진 화염은 브란트를 집어삼켰고, 그대로 다른 파티 멤버들에게도 향해졌다. 나는 아차하는 순간 양팔로 안면을 감싸면서 눈을 감았다. 바로 다음 순간, 맹렬한 열이 전신을 감싸왔다.

온몸이 불에 타오르는 경험은 인생에서 두번째였지만, 필설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의 격통을 초래했다. 화염이 사라질 때까지 양손을 얼굴에서 떼지 않았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목구멍과 눈알은 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경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각이 남아 있는 만큼, 아픔과 손상 정도를 뼈져리게 깨달았다. 먼저 얼굴을 지켜낸 손가락은 탄화되어 맥없이 떨어졌다. 게다가 양쪽 귀도 불타고 말았다. 옷에도 불이 붙어서 나는 지면을 뒹굴어 어떻게든 진화를 시도했다.

전신에 화상을 입었고 심한 곳은 탄화되어버렸다. 하지만 내 머리는 너무나도 극심한 충격에 의해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으로, 처음 수초간의 격통을 겪는 와중에도 놀랄만큼 냉정했다. 그리고 1초 후, 아픔이 내 이성을 내쫓으려 달려들었다. 이걸 견딜 정도면 제정신 따위 필요 없다. 나는 어중간한 방어자세를 취한 것을 후회하면서 바닥에 누웠다.

뒹굴고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는 있었지만 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르기에 자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한 직후, 이성을 배신하듯 몸이 멋대로 굴러다녔다. 눈을 덮으려해도 이미 손가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눈 앞에 덮쳐온 것은, 두마리 째의 키메라를 조용히 때려부수는 나프로이의 모습이었다.



전투종료 후, 우르 스승님은 우리에게 적절한 회복마법을 걸어주었다. 극심한 격통을 견디기 위해 깨물다가 찢겨져 버렸던 혀까지 회복되었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브란트는 스스로도 회복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다, 장비품도 고가의 난연성이 높은 물건이라 그런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불꽃에 직격당했음에도 전신이 그을리는 정도의 피해에 그쳐있었다. 한편 노라는 원래부터 평상복 같은 차림으로 싸우고 있었기에, 의복이 불타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 역시, 나름 비싼 배낭을 제외하면 내 옷도 불타버리고 말았다. 과거의 교훈을 발판삼아 이번에는 배낭 안에 갈아입을 옷가지를 몇개 챙겨와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알몸의 소녀가 멈춰 서 있었다. 방금전까지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그녀는 코사메일 터였다. 북방계처럼 보이는 특유의 은발, 한없이 맑고 새하얀 피부, 실력에 비하면 의외로 가는 몸. 그녀의 의복은 금속제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장비하고 있던 단도와 부츠를 제외하면 다 녹아 버리고 말아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다. 전라의 그녀를 보더니 나프로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보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주님께 바친 몸입니다. 하지만 얼굴은 앞으로의 임무에 지장이 올 수도 있으니까, 시급히 잊어 주세요」

코사메는 태연스럽게 말해 버렸다. 나는 허둥지둥 바지와 옷을 꺼내 코사메에게 억지로 넘겼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아이에게 그런 차림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코사메는 내가 건네준 옷을 보더니, 잠시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묵묵히 옷을 껴입었다.



이처럼 미궁은 두려운 곳이다. 

회복마법을 받을 때 공포심이 함께 회복된 것일까? 다른 파티 멤버들은 공포의 감정 따윈 한조각도 내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심장이 경종처럼 울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심층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는 마물이나 마물에 가까워진 모험자 둘 중 하나겠지. 그 이론으로 따지면, 우리가 만난 여성은 마물이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꽃밭을 산책하는 듯이 걸어온 여성.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계란형 얼굴과 아몬드 모양의 눈, 가지런한 콧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가지런히 정돈된 이. 얼굴만으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인데 가볍게 웨이브진 긴 머리카락과, 길쭉한 손발, 손가락 끝, 손톱 모양, 입고 있는 얇은 비단 로브에 이르기까지. 한때 나는 그녀를 미의 화신이라고 생각했었다.

「......테리오프레프?」

나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반응형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