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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97화 괴물소녀와 노예소년


1호를 입술을 삐죽였다. 아무래도 그 동작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듯했다.

「너같은 건 말야, 내가 그럴 마음만 들면 한순간에 죽어버린다구」

뭐, 그건 그렇지. 나프로이 같은 인간들과 겨룰 수 있을 정도의 괴물에게 내가 저항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생사여탈권은 완전히 그녀가 쥐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죽이지 말아 주세요」

애원도 아니고 불손한 교섭도 아니다. 진심을 담은 내 말에, 1호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해져 있었다.

「뭐야. 그런 말을 하면 마치 내가 문답무용으로 너를 죽이려는 괴물같이 보이잖아」

「아닌가요?」

내 물음에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거, 완전 아니진 않네. 나는 괴물이야. 그러니까 그 뭐야, 좀 더 무서워 하라고」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어요. 역시 피를 빨리게 되는 건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헤에, 하고 웃었다. 그 몸짓은 한때 테리오프레프가 나에게 보여줬던 것과 똑같았다.

「흡혈귀도 아니고, 그런 귀찮은 짓 안해. 나는 손을 대기만 해도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랑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팔, 아까 잘려버렸던 것 같은데, 어떤 원리로 나은 건가요?」

팔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큰 구멍이 뚫렸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다니, 일반적인 생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1호는 아름다운 눈썹을 찌푸리면서 단어를 찾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겨우 적절한 단어를 찾았는지 즐거운 듯이 입을 열었다.

「난 말야, 유사 생명체니까 신체의 일부가 결손되어도 별로 상관이 없는 거야. 아픈 건 아픈 거지만 마력을 집중하면 바로 나아」

1호는 아마 그 존재의 근간에 해당하는 비밀을 선뜻 폭로해버렸다. 그런 건 알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협으로도 보고 있지 않은 건지. 아마 양쪽 다겠지.

「아, 이야기의 주도권을 멋대로 쥐지 말라구. 내가 널 데러온 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그녀는 화난 뺨을 부풀렸지만, 신기하게도 진심으로 화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는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당신이 날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 뭐였더라?」

그 질문에, 테리오프레프의 이름을 입에 담자 그녀는「이상한 이름」이라며 웃었다.

「그 테리오프레프와 내가 닮았어?」

「완전 똑같아요. 아니, 외모만 보면 동일인물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헤에,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었어?」

나는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고 미리 양해를 구한 뒤, 그녀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은혜의 열매 교회』의 지도자였던 테리오프레프가 어찌하여 궁지에 몰렸는가, 어떤 심정으로 미궁으로 도망쳐왔는가. 그리고 그 고귀한 최후의 순간에 어떤 태도로 임했는가에 대해. 1호는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로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결국,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복잡해보이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안타까운 이야기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전혀 맞지않는 발언을 남겼다. 그녀의 존재는 뭘까? 악의의 미궁에서 새로운 혼돈과 죽음을 흩뿌리는 강대한 마물일 터였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내 이야기 따위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일까.

「어떨까요. 『은혜의 열매 교회』신자들 입장에서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이 하다못해 마지막 구원......」

「그런 거 잘못됐어!」

1호는 큰 소리로 호통쳤다. 방안의 공기를 떨게 한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고 그녀는 분노의 감정을 끌어안은 채 서 있었다.

「너도 그런 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잖아?」

그 올곧은 눈동자는 테리오프레프 그 자체였다. 나는 1호에게 책망받고 있는 건지, 테리오프레프에게 책망받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그렇게 강력한 동료들이 있으면서, 왜 도와주려 하지 않았던 건데!」

「아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일시적인 동료에요. 평소에는 신참끼리 파티를 맺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때도 그랬어요」

시가플 대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프로이 일행에 비하면 천양지차였다. 게다가 우리가 있던 그 진흙탕 속에는 테리오프레프와 신자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1호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어깨를 떨었다.

「지금부터라도, 지상에 나가서 테리오프레프를 궁지에 몰아넣은 놈들을 몰살시켜 줄까」

잠시 침묵해있더니 갑자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감정이입이 지나쳤다.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 안하는 거야? 테리오프레프를 좋아했었잖아?」

그녀의 발언에, 나는 그저 가슴이 아팠다. 정말 짧은 순간을 함께 지낸 것에 불과했지만, 확실히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다. 힘이 있었다면 그녀를 구해주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힘도 없고, 그저 노예에 지나지 않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어이없어. 너처럼 포기가 빠른 건 미덕 따위가 아니야.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없다고?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고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너무 추한 행동이야!」

나는 어째서, 지하 15층까지 끌려와서까지 마물에게 설교당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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