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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103화 대기
눈을 뜬 순간, 나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해본 후에야 겨우 미궁 지하 16층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몸을 일으키니 목이 심하게 메말라 있었다.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나는 기는 것처럼 전진해 샘물에 입을 갖다 댔다. 차가운 샘물이 불타버린 듯한 목구멍을 적셨고 위까지 시원하게 흘러들어갔다. 잔뜩 물을 마신 후, 그대로 옆에 있는 벽에 기댔다. 몸은 매우 지쳐 있었고 고작 그 정도의 동작에 호흡마저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위에 1호의 모습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1호?」
목소리를 내어 이름을 불러봤지만 그녀의 대답은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곳은 지하 16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혼자서 생존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 주변에서 가장 약한 마물과 마주친다고 해도, 아마 내 저항 따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공포는 필요없다. 자신에게 되뇌이면서 부러질 것 같은 마음을 독려해낸다. 이럴 때, 공포심과 무모한 용기는 오히려 방해였다. 그저 냉정하게, 감정을 눌러 죽여야했다. 격렬하게 파도치는 심장을 강제로 억누르며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손가락이 두뇌회전에 방해되어 굳게 주먹을 쥐었다.
1호는 어디에 가버린 걸까? 이 주위에는 없다고 해도 그녀라면 순식간에 되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긴 하는 건가?
의문이 내 뇌리에 들러붙었다. 그녀는 변덕스러운 마물로, 나와는 친구처럼 교류하고 있지만 내 생사에는 집착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시술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겠지. 또 만약 그녀가 나를 상대하는 것에 질려버렸다면 두번 다시 이곳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러 있다가는 마물들이 온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마물과는 일체 조우하지 않는다는 기적을 바라면서 상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단, 그녀에게 돌아올 마음이 있다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상책이 아니었다. 1호가 나를 찾는 것도 곤란할 테고, 무엇보다도 찾으려고 할지부터가 의심스럽다.
나는 10초 정도 생각한 후, 1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여기서 지상까지 향하는 도중에 마물과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요행은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지쳐있었다. 지금 이 몸 상태로 뛰어다니거나 계단을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노력해서 죽던지, 노력하지 않고 죽던지 라는 양자택일이라면 전자는 수고가 드는 만큼 더 손해다.
자신에게도 괴로운 변명을 대면서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귀를 기울여보니 정적이 계속된다. 이따금 멀리서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해보니 미궁에서 완벽히 혼자가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이렇게 명상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쁘지 않네.
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시간의 경과도 잘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거짓말이라도 해서 현상황을 찬미할 필요가 있었다.
문득, 자신을 뒤덮고 있는『농밀한』마력이 느껴졌다. 짙은 건지 옅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1호는 짙다고 말했었다. 그럼 지금이야말로 마력 감지를 연습할 때다. 생각이 들자마자 왠지 우스워졌다. 평상심을 지키기 위해 뭔가 할일을 필요로 했지만, 나는 그 할일에조차 변명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튼 할일은 정해졌다.
먼저 주위의 마력을 이해하지 않으면 전제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1호가 마법을 쓸 때, 확실히 그쪽으로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이 미궁에서는 마물들이 배회하며 마력을 흡수하고 있을 테니 모종의 흐름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두눈을 감고 집중한다. 이내 미약하게나마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흐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공기의 흐름과도 달랐다. 아마 마력의 흐름이다. 마력이 흘러오는 방향과 마력이 흘러가는 방향이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를 해야겠지. 만약 강력한 마물 쪽으로 흐른다면 그쪽으로 향했을 때 그 마물과 조우하게 된다. 또는, 강력한 마물로부터 오히려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면 마력이 흐르는 쪽으로 향해야 했다.
1호는 주위의 마력을 그대로 현상으로 전환시켰다. 저게 가능하다면 마법의 횟수제한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몸에서 이끌어내는 마력을 불꽃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주위의 마력을 모아 불꽃을 만드는 것이 1호였다. 다른 누군가에게 가능한 일이라면 나에게도 가능하다. 입으로 중얼거리면서,『화염구(火炎球)』를 외쳤다.
마력을 모으는 것부터 잘 안됐기에 마법은 발현되지 못한 채 끝났다. 애초에 마력을 거머쥐는 감각부터 전혀 몰랐다.
「허~접」
그제서야 그곳에 1호가 서 있는 걸 눈치챘다. 나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너무 격하게 안도해버린 까닭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머, 잠시 떨어져 있었던 것뿐이니까 그렇게 울것까진 없잖아. 그게 아니면 뭐 내가 그렇게 그리웠어?」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믿기로 한 내 결단과 행동하길 미룬 태만함을 끌어안고 싶어졌다. 1호는 약간 만족스러운 듯이 코웃음쳤다.
「자, 네 신발이야」
그 손에는 확실히 내 신발이 들려있었다. 원래부터 더러웠지만 피에 젖어서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샘물에 씻고는 배낭 안에 있던 남은 신발 한 짝을 꺼내 신었다. 젖어서 차가운 신발의 감촉을 느끼며 간신히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려했던 공포심이 이제와서 끓어올라서, 나는 그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1호는 아무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은 단적으로 보면 충의를 맹세하는 의식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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