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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개좆같다(迷宮クソたわけ)」
제106화 계약


전투 개시후 그리 긴 시간은 경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의 맹자들은 리타이어당해 지면에 쓰러져 있었다. 전세는 완전히 결정났고 우르 스승님을 제외하면 움직일 수 있는 자도 없었다.

「그럼......」

1호의 오른팔에 마력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우르 스승님과 똑같은 기술을 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 마력밀도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스승님처럼 팔을 그으면 몸이 절단되는 수준으로는 끝나지 않겠지.

「기다려, 1호!」

1호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응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죽이지 말아줄래?」

「왜?」

내 애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입장에선 공격을 가해온 적을 물리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 행위였다. 원래라면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스승이야. 노예인 나에게도 친절히 대해주시는 분들 중 하나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을 죽이면 나는 널 싫어하게 될 거야」

나에게 있어 우르 스승님도 소중하고, 지금와선 1호에게도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1호는 이대로 물러나 주길 바랐다.

「......너는 참 치사한 말을 하네. 만약 이 모험자들에게 마물인 내가 패배해서, 내가 죽어버렸다면 저들을 싫어하게 될 거였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조금 슬퍼보였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1호가 죽으면 슬퍼질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나프로이나 우르 스승님을 원망하지는 않겠지.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궁에 들어왔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1호를 죽이려한 것이니까. 반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저들을 쓰러뜨린 1호에게, 나는 그녀의 호의를 방패삼아 저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는 나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1호가 좋아.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제 그녀의 선택에 따라 나는 그녀를 원망하게 된다. 호의도 우정도 앞으로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를 막을 수단은 그것말곤 없었다.

우르 스승님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폭력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말. 그렇지만 나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반론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선 우월한 폭력을 지닌 자들이 더 강대한 폭력의 천재지변에 의해 때려눕혀져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호의를 최대한 이용하는, 지독히도 한심한 행동 밖엔 없었다.

1호는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우르 스승님은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나는 우르 스승님을 재촉했다. 그녀는 역시나 침착해 있었고 1호를 경계하면서 차례대로 회복마법을 영창해갔다. 그 결과, 이미 절명해버린 브란트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체력을 회복했다. 코사메는 또 다시 전라가 되어 버렸기에 나는 아까 배낭에 넣어두었던 덜마른 옷을 건네주었다. 물기를 짜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축축한 옷을, 코사메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

전원에겐 이미 전의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기에, 모두들 조용히 1호의 판단을 기다렸다. 1호의 판단여하에 따라 몰살당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에겐 더 이상 그것에 저항할 정신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몇분 정도 침묵해 있다가, 1호는 조금씩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좋아. 봐줄게」

그 표정은 결코 진심으로 납득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판단해준 거라면 더 이상 다른 불평은 할 수 없었다.

「단, 수하를 상층으로 올라가게 하는 건에 대해선 조건을 붙이겠어. 한달에 한번, 지하 15층에 있는 내 방에 영광의 메달을 1개씩 가져올 것」

이번 전투로 그녀는 2개의 메달을 소비했다. 그걸 보충하고 싶은 거겠지.

「만약 한달 이상 납품이 지연되면 또 미궁의 마물들을 상층으로 올려보낼거야. 그거랑......」

2호를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때는 이 아이도 같이 데려올 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뿐이니까 죽이진 않을 거야. 이 아이를 보내면 다른 녀석들은 곧바로 돌아가도 좋아」

그녀는 산제물을 요구하는 사신(邪神)이 되어버린 듯했다.

「현자 우르에리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킬게」

우르 스승님은 선언했다. 내 의사와는 관계가 없는지 확인은 받지 않았다.

「강철 나프로이도 약속한다」

바닥에 앉은 채로 나프로이는 찌뿌둥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르 스승님에 이어서 선서했다. 그것은 메달과 함께 나 역시 달마다 그녀에게 바쳐지는 헌상물이 되어버렸다는 말이었다.

「1호에게 질문. 돌아갈 때 나는 어떻게 해?」

다른 멤버들이 먼저 돌아간 후, 1호와의 용무가 끝난 다음 따로 혼자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당장 오늘 밤에라도 야반도주를 해야만 했다.

「그건 괜찮아. 며칠 정도 지나서 기분이 풀리면 내가 그림자 넘기로 미궁 입구까지 배웅해 줄테니까」

며칠!

끽해야 몇시간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생각 외로 마음에 들어버린 듯했다. 앞으로 달마다 며칠 정도는 그녀와 함께 지내야하는 것인가?

「약속이 지켜지는 한, 나는 얌전히 지낼거야. 그걸로 괜찮지?」

물어보는 1호에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새롭게 헌상물이라는 라벨이 부착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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